[오늘과 내일/김유영]대형마트 규제 10년이 남긴 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8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골목상권 활성화 안 되고 마트 산업만 위축
소비자 편익 떨어뜨린 규제만능주의 버려야

김유영 산업2부장
김유영 산업2부장
대형마트 A사는 새벽에 만든 빵을 표방한 ‘새벽빵’을 판다. 고객이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마트 내 빵집에서 바로 구워 배달해주는 방식이다. 여전히 따뜻하고 바삭하다. 이런 빵을 새벽에 받아 아침에 먹으면 좋겠지만 지금은 사실상 힘들다. 대형마트는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이 금지돼 있다. 따라서 새벽빵을 정확하게 정의하면 새벽에 반죽해 대형마트 영업이 가능해지는 오전 10시부터 배송하는 빵이다. 극히 일부 지역에 국한해 새벽빵이 새벽배송 되지만 이는 경기 외곽 물류센터에서 만들어져 배달된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쿠팡과 마켓컬리 등 온라인 플랫폼이 ‘빵지순례’ 하는 소비자를 겨냥해 유명 베이커리 제품을 경쟁적으로 새벽배송하고 나선 것과 대조적이다. 온라인 플랫폼이 새벽배송으로 사세를 불려갈 때 대형마트는 영업시간 외에는 배송이 제한돼 새벽배송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못했다. 이는 대형마트 규제의 영향이 크다. 대형마트는 2012년부터 유통산업발전법을 통해 영업시간 제한과 주 2회 의무 휴업 규제를 받게 됐다.

이는 전통시장 등 골목상권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10년간의 규제로 골목상권이 살아났다고 말하기는 여전히 힘들다. 사람들은 대형마트가 문을 닫으면 동네 식자재 마트나 편의점에 갈지언정 전통시장엔 여전히 안 갔다. 바가지를 씌우거나 현금 거래만 하려고 들며 위생 상태도 의문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이 같은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선거철만 되면 전통시장을 찾으며 ‘보호와 지원’을 우선시했다. 이는 전통시장을 개선하고 혁신할 기회를 늦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때 한 카드사가 수십억 원을 들여 전통시장을 리모델링해서 핫플레이스로 만들었지만, 이젠 곳곳에 임대 현수막이 나붙어 있는 등 활기를 잃었다. 지원이 끊기면서 상권도 바로 죽었다.

이미 소상공인과 대형마트는 경쟁 구도가 아니다. 실제로 인천의 한 대형마트가 폐점하자 인근 3km 이내 식당 등 소상공인 매출이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마트와 상인의 ‘동반 성장’을 내건 규제가 전체 상권을 ‘동반 위축’시킨 것. 업태는 다르지만 서울 여의도에 ‘더현대서울’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바로 옆 IFC몰은 망할 것이란 우려가 나왔지만, 1년 뒤 IFC몰 매출은 이전보다 50% 늘었다. 유동인구가 몰리면서 상권이 커진 결과다.

대형마트 규제는 결과적으로 골목상권을 살리지도 못했고 대형마트 산업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과거 백화점 셔틀버스 운행 중지 등의 규제가 있었다. 인근 상인과 버스회사 등을 의식한 규제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가용으로 백화점에 갔고 셔틀버스 기사 3000여 명만 졸지에 실업자가 되며 엉뚱한 곳에 불똥이 튀었다. 10년간 펼쳐온 대형마트 규제도 다르지 않다. 운영은 대기업이 해도 중소기업이 물건을 납품하고 농부나 어부가 농축수산물을 파는 주요한 판로이기 때문이다.

요새는 골목 여행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나름의 매력이 있는 골목상권이 적지 않다. 10년 전 대형마트 사업을 제약하는 손쉬운 규제를 가하기보다 왜 골목상권이 침체됐는지 원인을 진단하고 자체적인 경쟁력을 키우기에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대형마트가 제공하지 못하는 가치를 찾아내 잘하는 걸 더 잘하게 만들어야 했다. 규제만능주의에 사로잡혀 탁상에서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며 잘하는 걸 못하게 하기보다는 못하는 사람도 잘할 수 있게 근본적인 경쟁력을 키워주는 방안이 이제라도 나와야 한다.

김유영 산업2부장 abc@donga.com
#대형마트 규제#마트 산업 위축#규제 만능주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