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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특파원칼럼/문병기]미국이 아베 사망에 조기를 내건 이유

입력 2022-08-01 03:00업데이트 2022-08-0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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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독트린’이 미국 움직여
국익 지킬 ‘尹 독트린’ 나와야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총리, 그리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 남아공의 악명 높은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를 철폐한 만델라 전 대통령과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공존에 합의한 오슬로 협정을 이끌어낸 페레스 전 총리는 세계사적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두 사람과 선뜻 비슷한 점을 찾기 어려운 아베 전 총리까지 세 전직 정상의 공통점은 미국이 이들의 사망을 추모하기 위해 조기(弔旗)를 걸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콜린 파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같이 나라에 큰 영향을 미친 인사가 세상을 떠나면 대통령 포고문으로 조기를 달지만 외국 정상에 대한 조기 게양은 흔치 않다. 공과(功過) 평가가 엇갈리기 쉬운 외국 정치인 사망에 조기를 걸어 애도하기에는 뒤따를 외교적 후과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총 8년 8개월 재임해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운 아베 전 총리는 ‘빛’에 비해 ‘그림자’가 뚜렷하다. 그럼에도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직접 일본대사관을 찾은 데 이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을 일본에 보내 조문하고, 조기까지 게양한 이유는 무엇일까.

에드거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은 지난달 20일(현지 시간) 토론회에서 “미국은 오랫동안 일본이 안보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길 희망해 왔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목표인 역내(域內) 전략적 균형을 위해 일본이 더 큰 역할을 맡는 것은 분명히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동맹국들을 통해 중국과 경제, 군사적 세력 균형을 이루고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려면 일본 재무장화가 필수라고 본다는 얘기다.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보통국가화를 추구한 아베 전 총리가 사망한 지 3주가 넘도록 미국이 추모 분위기를 이어가는 배경이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일본의 존재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는 물론이고 중국 일대일로 구상에 대항할 ‘글로벌 인프라 투자 파트너십(PGII)’을 일본과 함께 출범시켰다. 일본은 오커스(AUKUS) 참여국 영국과는 차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에 합의했고 호주와는 태평양에서 작전할 때 자위대 보호 전술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국제 군사 무대에서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경제산업상은 지난달 29일 미일 첫 외교·경제 2+2 장관급 회의에서 “아베 전 총리는 10년 전 워싱턴에서 ‘일본이 돌아왔다’고 선언했다. 일본은 민주주의 수호자인 미국과 다시 한번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라고 했다.

아베 전 총리의 보통국가화를 미국이 처음부터 대환영하지는 않았다. 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공개 비판하는 등 미국은 주변국과 갈등을 키우는 일본 행보에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아베 전 총리가 2007년 고안한 인도태평양 전략과 ‘쿼드(Quad)’같이 미국을 움직일 수 있는 외교적 레버리지(지렛대)는 이런 미국의 우려를 적극적 지지로 바꾼 중요한 요인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체 인도태평양 전략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이 대만을 두고 일촉즉발이고, 미국과 일본이 반도체 동맹같이 우리 운명을 뒤바꿀 이슈를 주도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취임 석 달이 되도록 외교 독트린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쉽다. ‘자유와 인권의 가치 동맹’ 강화라는 선언적 비전만으로는 급변하는 국제 질서에서 국익을 지키기 어렵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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