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가져온 소외감, 노래에 담아”…세상에 없는 음악 만드는 밴드 ‘넘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7일 11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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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길을 걷다 보면 내가 아는 모든 게 사라져. 무언가 거대한 빛 덩이라도 떨어지면

돌아갈 수 있진 않을까.’

명랑한 비트에 기계음이 섞인, 찌르는 듯 한 보컬이 얹혀진 노래에서는 상실과 그리움이 묻어난다. 20일 발매한 포스트펑크 밴드 ‘넘넘(numnum)’의 싱글 ‘월드 뮤직’(World Music) 얘기다.

넘넘 멤버는 3명. 삐삐밴드 출신인 보컬 이윤정(46), 인디밴드 효도앤베이스로도 활동 중인 기타리스트 이승혁(37)과 베이시스트 이재(28)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소외감을 노래에 담았다. 지난해 낸 앨범 ‘NEWS’의 수록곡 ‘말이 먼저 나는 새’를 통해 불확실한 것들을 공유하기에 급급한 현대인들을 풍자한데 이어 이번 음악 역시 그들만의 실험적 음악세계에 사회 풍자적 메시지를 담았다.
●팬데믹이 가져온 소외감 담은 싱글 ‘월드 뮤직’
25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넘넘은 “코로나 19로 해외 공연이 무산되면서 이들을 덮친 ‘예측 불가능’에 대한 불안감이 월드 뮤직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패션브랜드 반스가 해마다 여는 뮤지션 발굴 프로그램 ‘반스 뮤지션 원티드’에서 2020년 최종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들은 그 영광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반스 뮤지션 원티드에서 1등을 하면서 반스 글로벌 뮤직 홍보대사인 앤더슨 팩과 함께 무대에 설 기회가 주어졌죠. 미국 텍사스에서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 공연도 계획돼있었는데 전부 코로나 19로 취소됐어요. 점점 포기하게 되고 소외됐다고 느끼고. 다들 지쳐가는 걸 보고 그 감정을 음악으로 만들어보자고 했어요.”(이윤정)

뮤직비디오에도 코로나 19가 준 불안감을 상징적으로 담았다. 세 멤버의 아바타(가상현실 캐릭터)가 큰 얼굴, 마른 팔과 다리의 기형적인 모습으로 등장해 하늘에서 떨어지고 허공을 헤집는 모습은 기괴하다. 뮤직비디오 연출은 이윤정의 남편이자 설치미술가 이현준이 맡았다.

“세 아바타 모두 본인의 상황을 컨트롤할 수 없는 모습이에요. 저는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고, 이재는 누군가에게 급히 전화를 해요. 승혁이도 손목이 돌아가면서 바닥에 주저 앉아버려요. 하늘에서 떨어지는 모습은 자살을 표현한 것이고, 이재가 전화를 하는 건 위기의 상황에서 구조요청을 하는 것이죠.” (이윤정)
●“대중성은 환상” 세상에 없는 음악 만드는 넘넘
“장르도 없고 아무 계획도 없어요.”

이윤정은 넘넘의 색깔을 이렇게 표현했다. 세 사람은 즉흥적으로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서로의 아이디어가 영감이 된다. 사실 이런 방식은, 1995년 삐삐밴드로 시작해 남편과 결성한 밴드 EE와 넘넘까지 27년 간 음악을 해온 이윤정에게도 생소하다.

“원래는 제가 주제를 잡고 주제에 맞는 비트와 음악을 만들어보는 방식으로 작업했다면, 이 친구들은 사운드 소스를 계속 던지면서 ‘이거 어때요?’라고 제안해요. 삐삐밴드에선 오빠들이 워낙 연주를 잘하니 그 틀에 맞춰 연주를 잘 하는 게 중요했는데 이 친구들과 있으면 즉흥적이 돼요. 예를 들어, 혁이가 무대 위에서 갑자기 절 쳐다보며 씩 웃으며 원래와 다르게 연주하면 저도 아무 가사나 읊어요.”(이윤정)

“앞으로 어떤 걸 하자고 계획하기보다 그 때 그 때 꽂혀 있는 것을 공유해요. 셋이 회의를 하면서 계획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하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음악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메시지가 담기죠.”(이재)

월드 뮤직을 마지막으로 넘넘과 현재 소속사 EMA의 계약은 종료된다. 이윤정은 조만간 미국으로 떠난다. 그간 음악을 비롯해 무대연출, 미술전시 등 다방면에서 종횡무진 했듯, K팝 관련 팝업 전시와 공연 기획, 상품 제작을 병행할 계획이다. 이승혁과 이재는 효도앤베이스 2집 앨범 발매 준비에 당분간 매진한다.

“넘넘의 해체냐”는 질문에 “마지막은 아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대중성보다 하고 싶은 음악에 순수한 열정을 다하는 넘넘의 활동은 계속된다는 뜻이다.

“평균 월급, 평균 키. 이런 걸 신경 쓰면서 살면 너무 힘들잖아요. 평균이나 대중성이라는 것이 환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소수의 취향이 없지 않으니까. 전 ‘내가 좋으면 사람들도 좋아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음악을 해요. 그게 소수일지 대중일지는 제가 예상할 수 없죠. 정답은 제가 좋은 음악을 하는 것, 그 뿐이에요.”(이재)

“넘넘은 가수라는 직업의 목적의식으로 돈을 벌자고 시작한 게 아니에요. 저희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 된 거죠. 사람들이 좋아할, 대중적인 음악은 차고 넘쳐요. 기존에 없는 새로운 제안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넘넘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음악도 있네?’라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걸로 만족해요.”(이윤정)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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