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미래 내다보는 기술 투자 필요

#2. 원전 보조기기를 생산하는 광주의 무진기연은 2014년 신고리 3, 4호기에 납품한 싱글스터드텐셔너(원자로 뚜껑 부품) 개선 연구개발(R&D) 계획을 최근 다시 짜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과의 공동 R&D로 국산화에 성공했지만 추가 투자 여력이 없어 기술 수준이 1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원천기술을 가진 해외 업체와의 기술력 격차는 더 벌어졌다. 조성은 무진기연 대표(63)는 “과거 웨스팅하우스 같은 세계적 기업이 기술력만 보고 광주 사무실까지 찾아왔었다. 국산화 R&D를 넘어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위해 ‘선택과 집중’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5년간의 탈(脫)원전 정책 후폭풍은 원전 미래 경쟁력과 직결된 R&D에 직격탄을 날렸다. 원전 부품과 설비는 다른 분야보다 더 높은 내구성과 안전성이 요구돼 장기적인 안목의 R&D가 필수다. 5년간 일감 절벽과 인력난이 겹치며 사실상 올 스톱된 원전 중소기업 R&D 명맥을 되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일감 절벽에 “기술 전수-업그레이드 끊겨”


이 회사는 올해 사용후핵연료 저장용기(캐스크)와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부품 개발을 목표로 5년여 만에 다시 R&D에 나선다. 올해 신입사원 10명도 뽑는다. 60, 70대 원전 기술자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서다. 삼홍기계 관계자는 “원전 기술력은 씨앗을 심는 것과 같다. 매출이 정상화되진 않았지만 미래를 위해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늦는다”고 했다.
원자력 업계에서 삼홍기계는 운이 좋은 편으로 꼽힌다. 자금난에 아예 공장을 팔거나 설비 노후화, 기술자 해고 등으로 기존 R&D 기술을 유지하지 못한 업체가 많다. R&D 수요 조사에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과제 수행 능력이 안 된다’는 기업들이 나오는 이유다.
○ 취업 불황에 원자력 인재 양성 시스템도 흔들
탈원전 5년은 원전 업계 구인·구직 시장 양쪽을 모두 고사시켰다. 원전 부품 수출 기업이던 S정밀은 구인 공고를 내면 2016년까지만 해도 20 대 1, 30 대 1에 이르는 경쟁률을 보였지만, 최근엔 지원자가 없어 인력을 못 뽑고 있다. 2020년 국내 원자력 기업 450여 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원전 경쟁력 확보 제약 요인으로 ‘기술 인력 확보’라고 답한 기업은 18.1%나 됐다.

최근 원전 부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는 원전 기술경쟁력 강화를 위해 올해 6700억 원 등 2025년까지 3조7000억 원(산업통상자원부), 2028년까지 SMR 4000억 원(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R&D 투자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중소기업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정부 R&D는 보통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대형 프로젝트 단위로 추진돼 특정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일부 기업만 혜택을 보는 데다 상용화 시점도 멀다”며 “당장 생태계 복원 마중물이 되는 지원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