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유출’ 피해 당했는데… 전체주의 ‘마녀사냥’ 고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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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배드 럭 뱅잉’

알토미디어 제공
알토미디어 제공
루마니아의 한 명문 학교에서 역사 교사로 일하는 에밀리아(카티아 파스카리우)에게 위기가 닥친다. 남편과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이 유출돼 성인 사이트에 올라온 것. 에밀리아는 급기야 학부모 회의에 불려간다. 고상한 척하는 학부모들과 동료 교사들의 온갖 희롱과 모욕이 쏟아진다. 그는 영상 유출 피해자임에도 마녀사냥을 당하며 궁지에 몰린다.

28일 개봉하는 ‘배드 럭 뱅잉’(사진)은 지난해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곰상을 받은 영화다. 3부로 나뉜 영화 중 1부는 영상 유출로 난감해진 에밀리아가 거리를 오가는 모습을 추격하듯 촬영하는 식으로 그의 하루를 따라간다. 2부는 이야기 전개를 멈추고 루마니아의 악명 높은 독재자 차우셰스쿠, 인종 차별 등 70여 개 키워드와 이미지를 차례로 보여준 뒤 관련 내용을 자막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면 루마니아 민족시인 에미네스쿠를 키워드로 그의 얼굴이 들어간 지폐를 보여준 뒤 ‘우리의 양심’이라는 설명을 붙이는 식이다. 3부는 에밀리아가 학부모 회의에서 겪는 이야기를 담았다.

2부에서 소개된 키워드는 3부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3부에서 학부모들은 양심의 상징인 에미네스쿠를 칭송하지만 피해자인 에밀리아를 맹비난하고 자녀들의 성인 사이트 접속을 방치한 자신들에게는 관대한, ‘양심 없는 모습’으로 일관한다. 학부모들은 1989년 무너진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을 비난하지만 이들이 하는 행동은 독재정권의 전체주의 그 자체다.

라두 주데 감독은 새로운 연출법으로 서사를 이끄는 한편 고국 루마니아에서 이뤄진 독재와 전체주의, 집시 차별, 현대인의 각종 위선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유쾌하게 꼬집는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배드 럭 뱅잉#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전체주의 마녀사냥 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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