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 주고, 도움 받는 ‘시간은행 품앗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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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5월부터 5개 지점서 시범운영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서울시간은행’에서 이은경 씨가 희귀 근육병을 앓는 김정한 씨에게 비대면 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 이날 이 씨는 수업을 통해 적립한 시간화폐 일부를 활용해 수건 접기 팁을 배웠다. 서울시는 시간화폐를 매개로 이웃 간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간은행 지점 5곳을 시범 운영 중이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의 ‘서울시간은행’에서 이은경 씨가 희귀 근육병을 앓는 김정한 씨에게 비대면 영어 수업을 하고 있다. 이날 이 씨는 수업을 통해 적립한 시간화폐 일부를 활용해 수건 접기 팁을 배웠다. 서울시는 시간화폐를 매개로 이웃 간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간은행 지점 5곳을 시범 운영 중이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 “도는 사슴, 암사슴(Do, a deer, a female deer).”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서울시간은행’ 타임뱅크하우스 지점. 주부 이은경 씨(51)는 율동과 함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노래를 따라불렀다. 희귀 근육병을 앓는 김정한 씨(26)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집에서 수업을 듣던 김 씨는 영화 속 율동과 함께 가사를 알려주는 이 씨를 보면서 “좋다”며 연신 호응했다. 김 씨는 “강의를 통해 외국인과도 더 잘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며 만족했다. 이 씨는 1시간 강의를 한 대가로 시간은행에서 ‘60타임페이’를 적립했다.

# 이 씨는 강의 직후 이주희 씨(38)에게 ‘30타임페이’를 지불하고 30분간 ‘수건접기 팁’을 전수받았다. 고급 호텔에서 비치하는 방법대로 수건을 동그랗게 말아 보인 이주희 씨는 정리·수납 전문가다. 이은경 씨는 “시부모님과 남편, 세 자녀까지 일곱 명이 한 집에 살아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정리 팁을 꼭 듣고 싶었다”며 좋아했다.
○ 타임페이 오가는 ‘도움의 고리’
서울시는 올 5월부터 시간은행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이웃을 도운 만큼 시간화폐를 적립했다가 도움이 필요할 때 꺼내 쓰는 품앗이 활동이다. 활동 종류나 난이도와 상관없이 도움을 제공한 시간만큼 시간화폐(타임페이)를 적립하는 게 특징이다.

이는 “모든 사람의 시간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는 미국 에드거 칸 박사의 철학에 따른 것이다. 현재 이 같은 방식의 시간은행 제도는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서울시는 △국민대-정릉지점 △서울시청지점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지점 △타임뱅크하우스지점 △서울시민지점까지 모두 5곳의 시간은행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네이버 ‘서울시간은행 카페’에 도움을 요청하거나 제공하겠다는 글을 올리면 각 지점의 코디네이터가 시민들을 매칭해 준다.

일반 봉사 활동과 달리 시간은행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호혜성’에 기반한다. 타임뱅크하우스지점 운영을 맡은 양혜란 타임뱅크코리아 사무국장은 “봉사자와 수혜자가 한 그룹 안에 있기 때문에 이어지는 ‘도움의 고리’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 카페 개설 후 “아이 돌봄 관련 도움을 주고 싶다”고 가장 먼저 글을 올린 갈인경 씨(54)는 “카페를 운영하다 지금은 쉬고 있어서 무료한 마음에 신청했는데 도움을 주고 나니 뿌듯했다”고 했다.
○ 내년 서울 전역으로 확대
서울시는 각각의 지점을 특성화해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민대-정릉지점은 지역사회와 대학 간 연계를 목표로 한다. 올 봄학기 국민대 행정학과 지방정책론 수업에선 학생들이 시간은행을 이용해 보고 개선점을 제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수업을 이끈 하현상 교수는 “시간은행을 통해 주민과 학생 간 친밀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내년에 시간은행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하고 서울 전역으로 지점을 확대할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전용 앱이 생기면 보다 간편하게 품앗이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네이버 카페에는 이달 중순까지 회원 412명이 모였다. 성별로는 여성이 남성의 두 배가량이었다. 연령대별로는 30대(104명·25.2%)와 40대(119명·28.9%)가 합쳐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입소문이 나면서 카페에 가입해 도움을 제공하겠다고 나서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고 했다. 시가 최근 서울시청지점 회원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 ‘줄 수 있는 도움’의 가짓수가 ‘받고 싶은 도움’의 2배가량이었다고 한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시간은행 품앗이#타임페이#서울시간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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