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용석]미래가치가 승리하는 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과학기술과 혁신이 미래 위한 것이란 믿음
현재와 미래 충돌에 미래 편 들어주는 연습해야

김용석 산업1부장
김용석 산업1부장
신문사 데스크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의심에 기반한 질문을 거듭해 기사를 철저히 검증하고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취재기자들을 지치게 만드는 사람들이다.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수학 노벨상’인 필즈상을 받는다는 기사를 준비하면서 취재기자에게 물었다. “허 교수 연구가 어디에 도움이 되나요.” “순수 학문 영역이라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설마…. 어디에든 쓰이겠지.” “언젠가 그런 날이 있겠지만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뒤 허 교수가 필즈상을 받고 귀국해 기념 강연을 가졌다. 강연 내용에서 데스크의 우문(愚問)에 대한 해답을 발견했다. 그의 답변은 이런 내용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글 쓰고 배우는 걸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약 중세시대였다면 영주가 ‘모든 국민이 글을 익히는 게 가뭄과 흉작 해결에 도움이 되느냐’고 질문했을 때 학자들이 대답하기 곤란했을 겁니다.”

며칠이 지나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쏘아올린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보내온 심(深) 우주 관측 사진이 공개됐다. 제임스웹이 찍은 46억 광년(1광년은 9조4607억 km) 떨어진 은하단 사진에선 135억 광년 떨어진 초기 우주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빛이 포착됐다. 빛의 속도로 135억 년을 가야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온 135억 년 전 빛을 눈으로 확인하는 상황의 비현실성이라니.

제임스웹 망원경 제작 과정은 오류와 실패를 거듭했다. 프로젝트 기간은 11년에서 25년으로 늘어났다. 예산도 당초 예상의 10배인 110억 달러(약 13조 원)가 됐다. 하루에 14억 원 넘게 쓰는 돈 먹는 하마, 성공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을 25년 버텨낸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찌 보면 허준이 교수 연구를 지원하고, 제임스웹 망원경에 13조 원을 쏟아붓는 것은 그 결과물이 유용할 거란 확신보다, 그 사회가 그만큼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닐까. “성공을 확신하지도 못한 채 25년간 밑 빠진 독에 13조 원을 쏟을 정도로 우리는 과학기술이 가져올 밝은 미래를 믿습니다.”

미래에 대한 믿음의 천적은 현재의 공포와 위기감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운 미래이긴 하지만 세계에 엄습한 경기침체 공포는 미래가치에 의지해 온 스타트업의 겨울을 불러오고 있다.

20일 뉴욕타임스는 스톡옵션을 담보로 현금을 대출한 스타트업 직원들이 주식가치 폭락으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 사연을 보도했다. 스타트업 직원들뿐일까. 블록체인이나 메타버스 생태계 같은 미래에 인생을 건 많은 젊은 세대가 미래가치 균열로 타격을 입고 있다.

눈앞에 보이는 현재가치와 손에 잘 잡히지 않는 미래가치가 충돌할 때 미래를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해집단들은 현재가치를 중심으로 철옹성을 치고 있다. 세상을 뒤엎을 새로운 기술이 탄생했을 때 찬성하는 쪽은 희망을 걸지만 반대하는 쪽은 목숨을 건다. 미래로 이끄는 리더 역할을 해야 할 정치인들은 현재가치의 이해관계 속에서 표 계산에 바쁘고, 미래를 좇는 기업가들은 기존 제도에 손발이 묶인다.

우리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 과학기술과 그로 인한 혁신이다. 혁신이 우리 삶 주변에서 충돌과 갈등을 일으켰을 때, 미래가치의 손을 들어주는 연습을 우리는 좀 더 해야만 한다.


김용석 산업1부장 yong@donga.com


#미래가치#과학기술#혁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