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방송 타이틀 그려낸 손끝…내가 글씨를 쓰는 이유는”[전승훈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0일 14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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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는 까만 먹물 속에 있는 가장 하얀 빛을 찾아내는 작업입니다. 그 빛을 발산해 세상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것이 글씨를 쓰는 사람들이 할 일이죠.”

1세대 캘리그라피 작가이자 20년간 KBS에서 ‘불멸의 이순신’ ‘진품명품’ ‘명견만리’ 등의 대표적인 방송 타이틀을 써온 작가 장천(章川) 김성태. 그는 글씨를 쓰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그가 쓴 역동적이면서도 세련된 캘리그라피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서체의 아름다움을 넘어 글귀에 담긴 뜻이 마음 속에 또렷이 살아나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경남 거창에서 태어난 김 작가는 여섯 살에 서예학원을 하시던 아버지에게 글씨를 배웠다. 국내 최초의 서예 전공학과인 원광대 서예과 1기 생으로 졸업했고, 동국대 인문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한국서예사를 전공했다. 대학원 논문 주제는 ‘고운 최치원의 서예연구’. 1997년 동아미술제 입선을 시작으로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특선 2회, 입선 4회 수상으로 초대작가가 됐다. 한문과 한글 분야의 전통 서예가의 길을 걸었던 그가 어떻게 캘리그라피 작가가 됐을까.

“1997년 어느날, 당시 핫한 드라마였던 KBS1TV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을 보면서 나도 저런 방송 타이틀을 쓰면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방송 타이틀을 다양한 스타일로 연습하면서 차곡차곡 포트폴리오를 모으기 시작했지요. 그때부터 나의 캘리그라피 인생이 시작됐습니다.”

그로부터 6년 후인 2003년. 그는 KBS의 방송미술을 담당하는 자회사인 KBS아트비전에 공채 3기로 입사했다. ‘불멸의 이순신’ ‘태종 이방원’ ‘한국인의 밥상’ ‘진품명품’ ‘명견만리’ ‘전설의 고향’ ‘장영실’ ‘동행’ 등 KBS의 굵직한 방송 타이틀이 그의 손끝에서 나왔다.

“방송 타이틀 의뢰가 들어오면 드라마 같은 경우는 시놉시스를 여러차례 읽으며 고민합니다. 이후 연출팀과 논의를 하죠. 연출팀에서는 힘이 있으면 좋겠다, 거칠었으면 혹은 깔끔했으면 좋겠다, 세련되고 럭셔리한 분위기를 원한다 등등 여러 가지 주문을 합니다. 그 말을 종합해서 제가 생각하는 글씨를 여러 가지 시안으로 써나가게 됩니다.”

―올해 방영된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글씨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

“이방원을 다룬 사극이라 전쟁과 권력 쟁탈의 스토리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거칠고, 힘있는 글씨가 어울릴 것이다. 그런데 연출팀에서는 타이틀에서 너무 센 느낌은 살짝 줄이면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PD가 강력한 왕권을 세웠던 이방원의 카리스마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부분을 재조명함으로써 이방원이라는 인물을 재해석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그의 드라마 타이틀 첫 입봉작은 2003년 TV소설 ‘찔레꽃’이었다. 60-70년대 부모님 세대의 애환과 희노애락을 담은 드라마였다. 김 작가는 “누구나 가난했던 시절, 찔레꽃처럼 가시덤불 같은 애환과 곡절을 겪으면서도, 하얗게 꽃을 피워내는 찔레꽃의 느낌을 글씨에 담아보려 했다”고 말했다.

―기억에 남는 방송 타이틀 글씨는.

“‘한국인의 밥상’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밥상은 고정된 식탁이 아니라, 평상에서 펼쳐놓고 먹어도, 너럭바위에 앉아서 차려 먹어도 되는 밥상이다. 최불암 씨가 시골 곳곳을 찾아가 숨은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인데, 그 맛집이 장사를 하는 가게가 아니라 동네주민들로부터 참 음식을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 일반 가정이다. 그런 집을 찾아가 대대로 손맛을 이어온 어머니들의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하나 끌어내는 프로그램이다. 글씨 자체가 나무처럼 친숙하고 정다운 느낌을 표현하려고 했다.

영상앨범 ‘산’은 산봉우리 모습을 그대로 본뜬 상형문자의 형태로 썼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다. 현재는 타이틀이 다르게 바뀌었는데, 상형문자 산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명견만리’는 최초로 강연과 다큐멘터리를 결합한 형태의 프로그램이어서 개성있는 글씨를 원했다. 평소에 자주 볼 수 없는, 끝이 예리하면서도 젊은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색다른 글씨체로 표현하려 했다.”

김 작가가 늘 가슴에 품고 사는 말은 ‘의재필선(意在筆先)’이다. ‘붓질보다 뜻이 먼저다’라는 말이다. 그는 “글씨와 정신이 일치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최근 캘리그라피가 유행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감에 따라 자칫 보기에 예쁘고 좋은 글씨로만 캘리그라피를 바라보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단호하다.

“캘리그라피를 단순히 아름다운 글씨라는 외형적인 것만 바라보면 그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그저 글을 예쁘게 꾸미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건 제대로 접근하지 못한 거지요. 아무리 글씨를 잘 써도 그 안에 철학과 감성을 담지 못하면 그건 그저 글씨일 뿐입니다.”

그는 그동안 충무공 이순신 장군, 다산 정약용,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등의 ‘명사(名士) 어록’을 주제로 한 시리즈 전시회를 열었다. 지난 2011년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초대전으로 열린 법정스님 추모 1주기 전시회를 준비할 때도 몇달간 깊은 묵상을 했다고 한다.

“이 시대의 스승이신 법정스님의 향기로운 글을 발췌해 전시회를 준비하는 기간만 9개월에 걸렸습니다. 문장 마다 그 의미를 느끼고 작품으로 옮기기 위해 스님의 발간된 모든 책을 끊임없이 다시 정독했죠. 법정스님의 가르침에 맞는 글씨를 쓰기 위해 스님이 머물렀던 송광사 불일암에도 몇 번이나 찾아갔습니다.”

그는 2013년에는 다산 정약용 탄신250주년 기념전을 아라아트갤러리에서 다산학술문화재단 주최로 열기도 했다. 2014년에는 이해인 수녀의 시문을 선화랑에서 전시했는데 수익금 전액을 소아암어린이돕기에 기부했다. 2016년에는 아산시 초청을 받아 이순신 장군 어록을 쓴 글씨를 아산문화재단갤러리에서 전시했다.

김 작가는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붓으로 배우는 캘리그라피’(덕주)라는 책을 펴냈다. 붓과 먹물, 화선지를 이용해 기본기부터 시작해 완성된 작품까지 따라서 써보며 배울 수 있는 책이다. 그는 캘리그라피를 배우는 사람에게 기초인 붓을 다루는 법을 강조한다.

―왜 붓으로 배우는 캘리그라피인가.

“캘리그라피의 시초인 서예를 하는 데 가장 필요한 재료는 ‘문방사우(文房四友)’다. 한자로 ‘지필연묵(紙筆硯墨)’이라고도 부르는데, 종이·붓·벼루·먹 네가지를 말한다. 요즘에는 전통적인 도구인 붓이나 화선지를 사용하지 않고 번지지 않는 종이에 펜, 색연필, 나무, 풀뿌리 등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해 캘리그라피를 연출하는 작가들이 늘고 있다. 이런 도구는 다루기가 쉬워 빨리 배울 수 있고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감성적인 캘리그라피를 표현하는 데 붓만큼 변화무쌍한 소재가 없기에, 붓으로 작업해보지 않는 캘리그라퍼들은 그 심오한 예술적 무게를 파악하기 힘들다. 붓과 먹물, 화선지가 만나 표현되는 그 힘과 맛은 다른 어떤 재료로도 설명할 수 없는 깊이가 있다. 즉 번지고, 마르고, 윤택하고, 거칠고 또 담묵과 농묵 등 검정 속에서도 그 색의 깊이가 다양하게 표현되는 매력이 있다.”

김 작가는 책에서 붓으로 긋는 획의 다양한 아름다움에 대해 설명한다. 붓은 누르는 힘 ‘필압(筆壓)’을 조절해 획의 좁고 넓은 폭의 차를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힘있게 누르면 굵어지고 살짝 누르면 가늘어진다. 그리고 붓에 묻은 먹물의 양에 따라서도 예술적 감성을 표현해낼 수 있다.

”붓에 물기가 많으면 번짐 현상이 나타나고, 붓이 마르면 비백(飛白) 현상이 나타난다. 화선지에 먹물이 100%로 닿지 않고 흰 부분이 생기는 현상인데, 항상 같은 농도의 글씨보다는 자연스럽게 먹물이 말라 비백현상이 나타날 때 글씨는 더 아름답습니다. 또한 붓에 먹물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필압을 가하면 붓이 갈라지는데, 이런 획으로 구사하는 필법을 ‘갈필(渴筆)’이라고 한다. 또한 먹물의 농도에 따라 옅은 회색에서부터 진한 검정색까지 굉장히 폭넓은 먹색의 농담을 줄 수 있다. 그리고 소품은 붓펜으로도 충분하지만, 작품성 높은 큰 작품을 하려면 종이, 붓, 먹물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는 다양한 캘리그라피 서체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한글 판본체의 시원인 ‘훈민정음체’와 필사체 중에서 ‘궁서’ 정자체에 바탕을 두고 자유분방한 캘리그라피로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예에서 캘리그라피라는 용어로 변천하게 된 사연은.

“서예(書藝)라는 말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정부에서 처음 실시한 미술전람회에 다른 미술품과 함께 글씨 부문이 참여하면서 그동안 일본인들이 부르던 ‘서도(書道)’라는 말 대신 독자적으로 붙인 명칭이다. 중국에서는 ‘서법(書法)’이라고 부른다. 서양에서 사용된 캘리그라피라는 용어는 한국을 비롯한 동양문화권에서는 서예라는 한정된 영역에 속한 시각예술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IT의 발전은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한 전문 서예인들을 디자인 시장으로 나오게 했고, 그들에 의해 정형화된 서예의 틀을 넘어 다양한 표현양식으로 발전하며 자연히 서예라는 용어 대신 캘리그라피란 용어가 사용됐다.”

―캘리그라피와 서예의 차이점은?

“서예가 기록이라는 수단에서 예술적 영역으로 넓혀간 반면, 캘리그라피는 서예가 가진 예술적 영역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됐다. 문방사우를 가지고 하는 서예가 컴퓨터 속으로 들어가 색을 입고, 다양한 문양으로치장을 하며, 3D로 변형되어 움직이며 입체감이 생겨난다. 심지어 효과음까지 넣어 문자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이러한 캘리그라피는 디자인 시장으로 외연을 넓히고, 방송·영화·신문·CI·BI·패키지·출판물·광고·LED·패션·머그컵·핸드폰케이스·문구류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있다.”

현재 캘리그라피는 자격증 시험을 통해 민간자격증(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록)을 발급하는 기관이 전국에 300곳이 넘는다. 김 작가는 현재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회장과 한국미술협회 캘리그라피 분과 이사를 맡고 있다. 서울 인사동 무우수 아카데미와 천안 나사렛대학교 평생교육원과 등에서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커다란 붓과 먹물을 담은 양동이를 들고 10m 이상의 천에 글씨를 쓰는 퍼포먼스도 즐겨 한다. 국악팀의 연주음악을 배경으로 3~5분 이내의 시간 안에 미리 밑그림도 없는 천에 글씨와 그림을 척척 써나간다.

“글씨 퍼포먼스는 예술적인 감각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체력이 중요합니다. 쪼그려 앉은 자세로 붓과 양동이를 들고 온 몸으로 글씨를 써 나간다는 사실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모든 기운을 다 쏟아내야 하는 작업입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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