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은 늘 바람직한가?[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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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공감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로 사람의 됨됨이를 칭송하거나 비판하는 일이 흔히 있습니다. 악의를 품고 특정인의 공감 능력 결손을 입에 담기도 합니다. 그렇게 공격하는 사람 자신의 공감 능력은 얼마나 대단한지가 궁금해지면 끈질기게 작동하는 직업의식에 흠칫 놀랍니다.

‘공감’의 일반적인 정의는 “남의 감정,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하여 자기도 그렇다고 느낌,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입니다. 독일어에서 시작해 영어 단어로 이어졌는데 원래 뜻은 “안으로 들어가서 느낀다”, 즉 남의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느낀다는 것이고, ‘공감’은 ‘함께 느낌’입니다. 정신분석학은 일찍이 공감이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받아들여 깊게 연구하고 활용해 왔습니다. 특히 해석에 의한 이해와 통찰보다는 공감을 듣고 관찰하고 이해하고 자료를 모으는 핵심적인 분석 행위로 받들어 실천하는 대표적인 학파가 하인츠 코헛이 창시한 자기심리학입니다. 태어나 자라면서 엄마의 공감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자기 이미지가 건강하게 발달하지 못한 결핍으로 인해 정신적 문제를 겪습니다. 자기심리학파 분석가는 공감적 몰입을 지속적으로 활용해서 피분석자의 미성숙한 자기 이미지가 건강하게 발달하도록 돕습니다.

일반적으로 공감은 바람직한 기능으로 여겨집니다. 공감이 서로 다른 의견의 간격을 좁히고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과연 늘 그러할까요?

고민이 있어 친구에게 상담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친구에게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꺼내자 즉시 친구가 공감합니다. “맞아, 나도 그런 적이 있어서 힘들었어!”라고. 기대처럼 공감해주는 친구가 고맙고 마음을 알아주니 기쁘지만 하던 이야기를 길게 하기가 어려워집니다. 비슷한 일을 겪었던 친구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고 미안합니다. 그래서 입을 닫습니다. 성급한 공감은 호소하고 싶은 마음을 막습니다. 공감은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도 차단합니다. 마음이 힘든 사람은 당연히 자신의 주관적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겁니다. 공감과 함께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살펴볼 기회가 사라집니다.

왜 내 이야기에 급하게 공감을 할까요?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을 수 있습니다. 예의 차원에서 습관적으로 공감하기도 합니다. 자기편으로 삼으려고 전략적으로 공감하는 사람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말솜씨가 현란합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넘어가서 매이게 됩니다. 말이 아닌 행동에 집중해서 진정성을 판단해야 합니다. 공감을 자신의 이득을 위해 갈라치기에 쓰는 경우를 제일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늘 있는 일입니다.

사람 마음이 그렇게 흘러갑니다. 자기편이라고 여기면 쉽게 공감이 됩니다. 적대적인 관계의 사람에게 공감하기는 꺼려집니다. 그러니 공감을 공유하는 무리와 그렇지 않은 무리 사이의 갈등은 해소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공감이 단합을 굳히는 ‘접착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사회관계망이 출현하기 전에는, 공감 여부를 표현하지 않고 내 생각을 지킬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누구누구가 써서 올린 의견에 ‘좋아요’를 눌러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난감합니다. 구독자인 줄 알고 공감을 은근히 강요하면 누르지 않으면 내 편이 아닌 다른 편으로 간주하겠다는 의지가 읽히기 때문입니다.

공감의 진정성을 구분하는 데 다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으려는 사람은 섣부르게 공감하기보다는 말없이 잠잠하게 이야기를 듣습니다. 급하게 공감을 표출하면서 모처럼 어렵게 연 내 말문을 막지 않습니다. 서둘러 표현한 공감은 머리 아픈, 부담스러운 이야기를 더 듣고 싶지 않다는 소망을 담은 겁니다. 남의 말을 진정으로 들으려는 사람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내 말을 천천히 새겨듣고 자기 말도 신중하게 꺼냅니다.

해석은 여전히 정신분석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피분석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파악한 마음 흐름을 깊이 있게 정리하고 요약해서 말로 되돌려주는 행위입니다. 조급하게 이루어지면 작용보다 부작용이 큽니다. 깨달음을 돕기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해서 연상에 지장을 줍니다. 당연히 피분석자의 심리적인 저항도 늘어납니다.

친구 사이에서도 상대가 내 이야기를 제대로 안 듣고 멋대로 생각하고 가볍게 말하면 허망합니다. 고개를 끄덕인다고 공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그 사람의 평소 버릇일 수 있습니다. 달래주는 말이 다 진심에서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습관적인 반응일지 모릅니다. 섣부른 지지는 문제의 뿌리를 살펴 해결책을 궁리할 공간을 없앱니다.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공감하는 척해도 교묘해서 알기 어렵습니다. 나중에 변덕을 부릴지는 그 사람조차 모릅니다.

남이 나를 이해해 주는 것과 남이 나를 실제로 돕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힘이 들어도 내 문제는 스스로 나서서 해결해야 합니다. 공감의 향기에 취하면 고단한 마음에 잠시 위안이 될 수는 있으나 문제 해결은 미뤄지고 고통의 총량은 오히려 늘어납니다. 공감은 때로는 약, 때로는 독입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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