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투자자 보호제도 마련 미룰 때 아니다[동아시론/박선영]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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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사태’ 이후 美, 유럽 보호책 마련 속도내
韓, 거래소들의 ‘자율 규제’로는 한계 있어
독립적 주체가 감독, 제재하는 기틀 마련해야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는 아홉 개의 지옥이 존재한다. 그중 제8지옥에는 사기로 주변에 해악을 끼친 사람들이 열 개의 말레볼제(Malebolge), 즉 악의 구렁에서 벌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제8지옥의 가장 깊은 열 번째 악의 구렁에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금화를 위조한 아다모와 화폐 위조범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약 700년 전인 1320년에도 화폐를 위조하는 일은 사회의 근간을 위협하는 중범죄로 간주되었던 셈이다. 실제로 아다모가 위조한 금화의 양이 너무 많아 피렌체의 재정이 흔들릴 정도였으며, 이는 유럽 경제에도 악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근래 들어 위조화폐는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가상화폐가 비슷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다. 관련법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투자자들이 몰렸고, 최근 시세 폭락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무엇보다 글로벌 규제 당국자들에게 가상자산 시장 규제의 시급성을 일깨워준 사건은 다름 아닌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만든 스테이블코인 테라와 그 자매 코인인 루나의 붕괴일 것이다.

각국도 빠르게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유럽연합(EU)은 지난달 30일 가상자산에 대한 포괄 규제안인 ‘MiCA(Markets in Cryptoassets regulation)’에 대한 합의를 이루었는데, 이번 합의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스테이블코인’(달러 등 법정 화폐에 연동하도록 설계된 코인)에 대한 규제이다. 이번 합의안에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들이 은행 규제 당국의 감독을 받아야 하고, 지급준비금을 갖추어야 하며, 일일 거래량 2억 달러를 넘지 못한다는 조치가 담겨 있다. 같은 날 미국에서도 연방예금보험공사, 통화감독청, 소비자금융보호국 등이 참여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의 금융시장 워킹그룹 회의가 개최됐다. 여기서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은 스테이블코인 규제의 중요성에 대해서 강조했고, 빠르면 연내 스테이블코인에 관한 입법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렇게 주요 글로벌 규제 당국자들은 테라 사태 이후 스테이블코인을 포함한 가상자산 시장의 투자자 보호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글로벌 3대 가상자산 시장인 우리나라의 대응은 어떠한가. 지난달 22일 5대 디지털자산거래소들은 공동 협의체를 구성하고, 업무협약을 체결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13일 테라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해 마련된 당정간담회에서 제시되었던 가상자산사업자 공동 자율 개선 방안의 첫 번째 이행 단계이다. 관련법이 전무한 상황에서 위기에 공동 대응을 하겠다는 거래소들의 발표는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할 만하다.

다만 거래소별로 분절화된 가상자산 시장에서 공동 협의체가 태생적으로 지닌 한계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인지하여야 한다. 개별 거래소의 상장과 상장 종료의 의사결정 과정이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과정에서 이해상충 당사자 간 ‘정보차단벽(chinese wall)’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거래 체결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모두 블랙박스 속에 있다. 따라서 공동 협의체의 투자자 보호가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독립적인 주체가 개별 거래소의 영업 행위를 감독, 제재할 수 있는 제도적 기틀이 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글로벌 시장과 국내 시장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글로벌거래소 FTX의 설립자 샘 뱅크먼프리드의 인터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2만여 개의 가상자산 중에서 최대 100개 정도만이 실제 가치를 지닌 것으로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FTX 거래소는 엄선된 65개의 가상자산만 취급하고 있다. 반면 올해 금융정보분석원 발표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국내에서 거래되는 가상자산은 623개이고, 단독 상장 가상자산은 403개에 이른다. 최근과 같이 어려운 글로벌 금융 환경 속에서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가상자산에 노출된 국내 투자자들의 피해 가능성에 대해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2017년 겨울부터 해당 이슈로 국회를 출입했다. 그동안 국회에서 투자자 보호의 필요성 등이 논의됐지만 아직도 관련 법 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청년층의 코인 피해에 대한 이자 감면 조치 등에 나서기로 했지만 근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가상자산 시장의 두 번째 상승 사이클이 끝났지만, 언제 다시 투자자들이 몰릴지 모를 일이다.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가상자산 산업의 육성과 투자자 보호가 균형 잡힌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회의 구체적인 입법 노력이 구체화돼야 한다. 그것이 추가적인 가상자산 피해를 막는 예방책임을 명심해야 한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코인#테라#가상자산#가상화폐#비트코인#투자자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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