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부도 스리랑카[횡설수설/정용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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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가 5월 19일 국가 부도를 선언한 지 두 달 가까이 지났다. 동아일보 특파원에 따르면 기름이 없어 주요 도시 시내에선 차량을 보기 힘들고, 마트 일부 매대는 텅텅 비어 있다고 한다. 시민들은 “고타바야는 도둑놈” “중국이 우리 것을 도둑질해 갔다” 등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몰디브를 거쳐 싱가포르로 달아난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73)의 ‘이메일 사임계’는 수리됐고 20일 의회 간접선거로 새 대통령이 선출될 예정이나 나라 전체가 혼돈 그 자체다.

▷2019년부터 집권해온 고타바야는 싱할라족의 유력 집안인 라자팍사 가문 출신이다. 먼저 권력의 핵심에 진입한 이는 형 마힌다(77)였다. 2005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동생 고타바야를 국방장관에 임명했다. 마힌다는 3선에 실패했지만 4년 뒤 고타바야가 최고 권좌에 오르며 라자팍사 가문은 ‘족벌정치’의 정점을 찍는다. 그는 형 마힌다를 총리, 동생 바실(71)을 재무장관, 아들 나말(36)을 체육장관에 앉혔다. 9남매의 맏형인 차말(80)은 농업관개장관이 됐다.

▷마힌다와 고타바야 형제는 2009년 북부 ‘타밀일람해방호랑이(LTTE)’ 반군과의 30년 내전을 끝냈다. 이후 중국 자본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인 남부 함반토타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인프라 건설에 착수했지만 경제성이 없는 허황된 개발사업이었다. 함반토타항 개발엔 11억 달러 이상이 들었는데 한 해 항구에 들어온 화물선이 34척일 때도 있었다고 한다. ‘마탈라 라자팍사 국제공항’은 미국 ‘포브스’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텅 빈 공항”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반중(反中) 감정도 격해지고 있다고 한다. 스리랑카를 해상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의 교두보로 삼은 중국이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지만 고금리, 불리한 계약 조건 등으로 빚만 눈덩이처럼 불었다는 게 현지인들의 인식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스리랑카 외채에서 중국 비중은 10% 정도”라고 반박한다. 다만 급한 불을 끄기 위해 10억 달러를 긴급 요청했는데도 중국은 발을 빼고 있어 스리랑카의 배신감은 커지고 있다.

▷‘국가 부도의 날’은 순식간에 온 듯하지만 실은 예고된 것이다. 국가 지도자들의 무능과 부패에 따른 필연적 결과다. 스리랑카 국민은 족벌정치를 20년가량 지지했다. 이제 와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집권당은 대선 후보로 현 총리를 지명했다. “또 다른 라자팍사일 뿐”이란 시민 반발이 커지고 있다고 한다. 스리랑카가 국가 리더십을 바로 세워 ‘신성한 섬나라’의 위상과 활력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외환위기를 경험해 봐서인지 남 일 같지 않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스리랑카#국가 부도#고타바야#반중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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