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중 “펑, 쾅” 사제총 2발… “용의자, 특정단체 연결된 아베에 불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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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아베 피격 사망]
시민들 “구급차 빨리” 아수라장된 현장


“펑. 쾅.”

“구급차! 구급차! 빨리!”

8일 오전 11시 31분경 일본 나라현 나라시의 번화가 야마토사이다이지역 앞에서 갑자기 두 차례의 총성이 울렸다. 두 번째 총성이 울리자마자 10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이곳에서 집권 자민당 후보의 지지 연설을 하고 있던 아베 신조 전 총리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전직 총리의 피격에 사람들이 괴성을 질렀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총기 규제가 엄격한 일본에서 전직 총리가 피격당하자 일본 열도가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 “총성 들은 아베 뒤돌아보자 한 발 더 발사”
아베 전 총리는 이날 유세 일정을 하루 전인 7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나가노현 유세에 나설 예정이었지만 자민당 내 ‘아베파’ 소속 의원이 출마한 나라에 오는 것으로 일정을 바꾸었다.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으로 통상 유세 때 이용하는 유세차에 탑승하지 않고 길거리 한복판에서 연설을 하다가 공격에 노출됐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그는 역 앞 로터리의 차도와 인도를 가르는 가드레일 앞에 설치된 연설대에 서서 연설을 시작했다. NHK 영상에 잡힌 용의자는 아베 전 총리 뒤에서 박수를 치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

오전 11시 30분경 유세 시작 1분 만에 아베 전 총리 뒤에서 “펑” 하는 소리가 났다. 이때 용의자는 가방에서 총을 꺼내 아베 전 총리에게 다가가 능숙한 자세로 총을 쏘는 자세를 취했다. “판단을 했다. 그는 안 되는 이유를 생각하는 것은…”이라고 말하는 순간 터진 총성에 아베 전 총리는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용의자는 약 5m 거리에서 한 발을 더 발사했다. 아베 전 총리는 왼쪽 가슴에서 피를 흘린 채 아스팔트 차도 위에 쓰러졌다. 주위에 하얀 연기가 났다.



현장에 있던 시민 모리오카 씨는 “장난인가 싶었는데 발포음이 들리고 하얀 연기가 났다.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고 ‘심장 마사지 하실 수 있는 분 없습니까. 제세동기 없습니까’라고 외치는 것을 듣고 큰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나라소방서에 곧바로 출동 요청이 들어와 구급차가 출동했다. 이후 닥터헬기로 갈아탄 뒤 낮 12시 20분 나라현립의대병원에 도착했다.

이 병원의 후쿠시마 히데타다 구급의학과 교수는 “아베 전 총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심폐정지 상태였다”며 “목에 총상 2곳이 있었고 심장의 큰 혈관이 손상돼 있었다. 신체 곳곳에 동시다발적으로 대량의 출혈이 발생해 피가 멈추지 않았다”고 밝혔다. 병원은 200mL 혈액을 100봉지 이상 수혈했지만 결국 피격 5시간 반 만인 오후 5시 3분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병원 측은 기자회견에서 “용의자가 쏜 두 발 중 한 발이 아베 전 총리의 왼쪽 어깨를 관통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한 발의 총상 또한 심장에 닿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 해상자위대 출신 무직 남성이 용의자
용의자인 전직 해상자위대원 야마가미 데쓰야(41)는 총격 직후 현장에서 체포됐다. 그는 오전 11시 35분경 경찰에 붙잡혔고, 별다른 저항 없이 총을 떨어뜨렸다. 쇠파이프로 추정되는 2개의 원형 통을 총구로 사용해 수제로 만든 총은 길이 40cm에 검은 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었다. 주간지 ‘슈칸겐다이’는 이 총이 3차원(3D) 프린터로 손쉽게 만든 조악한 총일 수 있다고 전했다.

나라현 경찰본부는 브리핑에서 “용의자가 특정 단체에 원한을 갖고 이 단체와 연결됐다고 생각하는 아베 전 총리를 노렸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아사히신문은 이 단체는 종교 단체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용의자는 2002년부터 3년간 히로시마현 구레의 해상자위대 부대에서 임기제 자위관으로 3년간 근무한 뒤 그만뒀다. 자위대 시절 연 1회 정도 소총 분해, 조립을 비롯해 실탄 사격 등 총을 다루는 훈련을 받았다.

최근에는 올 5월까지 1년 반 정도 교토 지역 창고에서 파견직으로 지게차로 짐을 나르는 일을 했다. 용의자가 근무했던 회사 관계자는 “말수가 적었고 얌전했다.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진 않았고 차 안에서 점심을 먹곤 했다”고 말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그는 현장에서 약 3km 떨어진 11m²짜리 월세 3만8000엔(약 37만 원)의 아파트에 살았다. 아파트 주민들은 그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라현의 공립고교를 함께 다닌 동급생에 따르면 고교 재학 시절 응원단에 있었지만 얌전한 성격이었고 같은 반 친구와도 대화를 거의 안 했다고 한다.

후쿠다 미쓰루 일본대 위기관리학부 교수는 “국가 요인이 수제 총으로 총격당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드물다”며 사제 총을 만들 수 있는 3D 프린터 기계 등의 소지 허가제를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일본#아베#피격#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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