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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김선미]수학의 아름다움을 다른 방식으로 보기

입력 2022-07-06 03:00업데이트 2022-07-06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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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산업1부 차장
5년 전 프랑스 파리에서 수학자 세드리크 빌라니를 만난 적이 있다. 수학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2010년 받았던 그가 진행을 맡은 강연에서였다. 카르티에 미술관 정원에서 열린 이 강연의 주제는 ‘속도의 밤’. 유럽우주국(ESA) 소속 우주항공사, 철학자, 작가, 싱어송라이터 등이 차례로 나와 속도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우주에서 겪은 무중력의 시간, 무성 영화의 속도…. ‘아, 수(數)의 세계가 이렇게 미학적이구나.’ 빌라니도 말했다. “수학자와 예술가는 닮은 점이 많습니다. 풍부한 감정, 상상, 깊은 생각, 그리고 좌절까지….” 그는 이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도와 프랑스 인공지능 정책의 밑그림도 그렸다.

학계도 활발한 융합이 이뤄지는 시대다. 어제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완전히 다른 두 수학 분야인 조합론과 대수기하학을 연결해 수학계의 난제를 풀었다. 그런데 그가 살아온 방식도 경계를 허무는 ‘하이브리드’였다. 한국의 천재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조카 손자인 그는 시(詩) 쓰기에 빠져 고교를 자퇴했고, 과학 이야기를 쓰려고 검정고시를 치러 서울대 물리학과에 진학했다가 복수전공으로 수학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한 수학자는 “조합론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필요한 분야”라며 “허 교수가 남들과 똑같이 살지 않아 ‘나만의 생각 근육’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학파가 음악에서 수학적 원리를 발견했듯 현대 수학자들도 음악에서 조화와 질서를 찾는다. “수학은 예술의 한 분야”라는 허 교수는 중학생 때부터 직접 작곡한 곡을 피아노로 연주했다. 그를 수학의 세계로 이끈 91세의 히로나카 헤이스케 서울대 석좌교수(1970년 필즈상 수상)도 음악 애호가였다. 세계적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는 친구인 히로나카 교수를 이렇게 평했다. “어떻게 이 사람은 이토록 음악을 사랑하며 이렇게 많은 지식을 갖췄는지 늘 의문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중학교 시절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몰두하다가 음악에 쏟았던 정열의 방향을 바꿔 수학자가 되었다. 그가 음악과 깊이 관계를 맺고 자기만의 방식, 즉 자신의 세계를 정립한 게 내게는 흥미로웠다.”

가설과 공리(다른 명제를 증명하는 데 전제가 되는 원리)를 기반으로 나만의 이론을 만들어 가는 수학의 세계는 논리적으로 명쾌해야 하면서도 상상력을 요구한다. 수학자들이 수학의 매력에 빠져드는 이유다. 그들은 서로의 연구에 대해 “아름답다”는 말로 칭찬을 한다. 하지만 모든 배움이 입시로 귀결되는 한국 사회는 수학에 대한 국민의 피로도가 유독 크다. 수학의 아름다움을 논했다가는 ‘괴짜’ 소리를 들을 공산이 크다.

최근 한국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원주율(π·파이)을 피아노로 친 곡이 화제가 됐다. 음계의 ‘도’를 1로 삼아 ‘3.141592…’로 이어지는 원주율을 ‘미도파도솔레레…’ 식으로 연주한 이 음악은 이 땅의 많은 ‘수포자’(수학 포기자)들에게도 감동을 줬다.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을 계기로 수학적 사고의 우아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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