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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부모님과 다시 찾은 놀이동산[2030세상/김지영]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입력 2022-07-05 03:00업데이트 2022-07-05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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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얼마 전, 오랜만에 세 자매 데이트를 계획했다. 올림픽공원에서 하는 페스티벌 티켓이 생긴 것을 계기로 근처 호텔을 예약하고 그 김에 놀이동산까지 가기로 결의했다. 페스티벌과 놀이동산이라니. 일상 회복, 더 정확히는 ‘오락’ 회복이 실감 나는 조합이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당일, 얼결에 부모님과 동선이 닿았다. “엄마 아빠, 우리랑 놀이동산 안 갈래?” 처음엔 당황스러워하던 두 분을 꾀어내는 데 성공했다. 놀이기구는 안 타도 그만이니 산책하며 분위기만 느끼자고. 구슬아이스크림만 먹어도 충분하다고.

멀리 놀이동산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와 마지막으로 온 건 못해도 20년 전. 함께 손을 잡고 걷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 추억이 되살아났다. 이후 친구들과 애인과 몇 번이고 다시 왔지만 달랐다. 시간을 거슬러 오른 듯 곳곳이 낯설고 반가웠다. 평균 연령 34세의 세 딸과 올해 환갑인 부모님의 놀이동산이라니. 사위들 없이, 손주들 없이 이 조합은 전체를 통틀어 우리밖에 없을 거라며 웃었다.

동화 속 세계 같았던 환상의 섬을 훤히 꿰는 데까지는 삼십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커서 만난 놀이동산은 하나의 큰 놀이터였다. 엄마 아빠는 놀이기구는 타지 않고 시종일관 카메라로 딸들을 좇았다. 무서웠다며 울먹이는 딸을 우리는 놀렸지만, 부모님은 초등학생 딸을 어르듯 안아주며 안쓰러워했다. “너희들 어릴 때 이거 많이 탔는데!”

스티커 사진까지 찍고 대망의 구슬아이스크림. 일부러 인당 하나씩, 각자 먹고 싶은 맛을 골랐다. 먹을 만한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사람들이 하나둘 바닥에 앉는 것이 보였다. 퍼레이드였다. 커서 만난 퍼레이드는 노동의 현장이었다. 특히 긴 막대로 기린 목을 지휘하는 퍼포머가 압권이었다. 슬슬 허리가 아파오기에 부모님 걱정이 되어 “갈까?” 물었더니 눈빛에 아쉬움이 역력하다. 알고 보니 누구보다도 즐기고 계셨다. 두 눈을 반짝이며 손뼉을 치고, 퍼포머와 손하트를 주고받으며 깔깔거리고 계셨다. 그야말로 온전히 아이가 되어 즐기는 모습. 처음이었다.

데이트할 때나 가던 테라스가 멋진 호숫가의 펍에서 맥주를 한 잔씩 하고,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를 사 호텔로 돌아오는 길, 아빠는 꿈속에 있는 것 같다셨다. 사실은 운전해 오는 길, 설레셨다고. 보호자가 아닌 입장에서 오는 놀이동산이 처음이라. “그럼 이제 보호자는 누구지?” 아무래도 가장 젊은, 내 눈엔 여전히 아기지만 서른둘이나 먹은 우리 막내가 이제는 제일 대장이다.

지금까지도 거의 매일, 문득문득 퍼레이드를 보던 두 분의 해맑은 표정이 아른거린다. 책임감으로부터 졸업한 홀가분함과 놀이동산이라는 공간의 특수성이 만나, 난생처음 발견한 두 분의 얼굴. 언니와 동생도 그렇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다고. 고작 며칠이 지났는데 벌써 꿈같아 조금은 슬프기까지 하다고. 죽기 전에 제일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되면, 이날 두 분의 표정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 같다. 우리 부디, 조금이라도 더 오래, 더 많이, 같이 놀자.


김지영 스타트업 투자심사역(VC)·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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