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천제 지낸 터에 들어선 ‘대통령집무실’ [안영배의 도시와 풍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7월 4일 15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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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타워에서 내려다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서울타워에서 내려다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 청와대를 외면하는 무정(無情)한 북악산
서울의 상징적인 중심축이 바뀌는 초유의 일을 맞이했다. 북악산자락 청와대 대통령집무실과 관저가 용산의 남산자락으로 옮겨갔다. 한양 정도 630년만에 서울의 상징적 주산(主山)이 바뀌게 된 셈이다. 이와 관련 경복궁·청와대와 용산의 입지 등을 집중 조명하는 학술 세미나가 주목을 받고 있다. 풍수, 명리 등 동양학의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는 학술단체인 한국풍수명리철학회는 ‘공간 의식, 그리고 운명’이라는 주제로 7월9일 성균관대학교 600주년 기념관 대강당(203호)에서 이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관련 논문을 바탕으로 한 저자들의 발표 내용이다.

지종학 박사(대한풍수지리학회 이사장)는 경복궁과 청와대의 입지에 대해 풍수지리학적 시각으로 진단했다. 그는 “경복궁과 청와대는 주산과 청룡, 백호 등 지형적 조건이 같기 때문에 한묶음으로 볼 수 있다”라고 전제한 뒤 “이곳에서 거주하면서 통치한 조선의 역대 임금(16명)과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12명)의 행보를 볼 때 좋은 터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광복 이후 청와대 주인들이 유난히 시련을 많이 겪다보니 국가신인도 추락과 연계되고, 풍수학의 신뢰성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태까지 불러오게 됐다는 것이다.

북악산자락 남쪽 자락아래에 자리잡은 청와대 공간.
북악산자락 남쪽 자락아래에 자리잡은 청와대 공간.

지 박사는 청와대·경복궁의 주산인 북악산이 무정(無情)한 게 가장 큰 풍수적 결함이라고 진단했다. 북악산은 힘 있게 우뚝 솟은 모습이지만, 산의 머리 부분이 동쪽을 향하면서 경복궁·청와대를 외면함으로써 무정한 주산이 돼버렸다는 주장이다. 이는 조선 초기 경복궁 입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도전, 권중화 등 유학자 그룹이 풍수지리학에서 중시하는 산의 면배(面背·앞면과 뒷면)와 유·무정(有無情)을 따지지 않고 넓은 명당터만을 고집하다보니 현재와 같은 배치가 됐다는 것이다.

산세(山勢)만 그런 게 아니다. 재화, 즉 경제력과 경쟁력을 상징하는 물길도 경복궁을 외면하고 있다. 주산인 북악산이 경복궁(청와대)을 외면하다보니 뒷산에서 감싸주듯이 내려오는 안정적인 물 공급을 받지 못한 채, 우백호(右白虎)에 해당하는 인왕산의 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됐다. 비유하자면 내 집 안에 우물이 없어서 이웃집 우물을 눈치보며 길어 마시는 격이다. 이는 한나라의 주권과 경제적 자립 측면에서 매우 취약한 구조가 된다.

지박사는 경복궁 터가 좋지 않다고 해서 서울의 풍수지리적 가치가 부정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서울은 북한산과 한강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대단한 풍수 명당이라는 것이다. 그는 청와대의 대안으로 삼청동과 용산이 좋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대통령 관저. 정면의 건물이 대통령이 침실로 사용하던 공간이다.
청와대 대통령 관저. 정면의 건물이 대통령이 침실로 사용하던 공간이다.

○ 천제(天祭) 지내던 둔지산 품에 안긴 대통령집무실
이덕형 박사는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선 용산의 둔지산에 대해 집중 조명했다. 둔지산은 남산(목멱산) 줄기에서 뻗어내린 지룡(支龍)에 해당하는 곳이다. 조선시대에 ‘둔지리’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던 둔지산 자락은 이후 일본군 병영기지, 미8군 주둔지, 국방부 및 한미연합사령부 등 군 관련 권력기관이 들어서게 됐다.

둔지산은 원래 국가적인 의례를 행하던 제단이 설치됐던 곳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원단(圓壇) 노인성단(老人星壇) 풍운뇌우단(風雲雷雨壇) 등 조선시대 국가적인 의례를 지내던 곳이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남교(南郊)가 설치되기도 했다.

그런데 둔지산은 사실 ‘용산(龍山)’이라는 지명과는 별 관계가 없는 산이다. 서울에서 원래 용산으로 불리던 곳은 천주교 용산성당(산천동)을 중심으로 효창동, 원효로동 일대와 지금은 마포구로 변경된 도화동과 공덕동 등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이었다. 용산은 또한 산 이름이기도 했다. 조선시대 지리지인 ‘동국여지지’에서는 “무악산의 남쪽 줄기가 한양을 감싸며 돌아나가다 한강변에서 끝나는데, 이를 용산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즉 인왕산에서 기원하는 무악산 줄기가 만리동 고개(만리재)와 효창공원을 거쳐 한강 바로 앞에서 우뚝 멈춰선 지형을 표현한 것이다. 그 모습이 마치 용처럼 보인다고 해서 용산이 됐다.

반면 둔지산은 경복궁의 안산에 해당하는 남산에서 기원한다. 산의 계보가 엄연히 다른 셈이다. 원래의 용산 일대는 수로를 통해 한양으로 물류가 집적되던 풍요로운 공간이었다면, 신용산(이태원동, 한남동 등)의 무대인 둔지산자락 일대는 신령스러운 터가 된다. 이 박사는 대통령집무실이 둔지산에 들어선 것과 관련해 “고종이 조선을 새롭게 만들겠다는 의지로 대한제국의 황제임을 선포하면서 하늘 제사를 지내던 공간이었던 둔지산에서 역사적 정신적 의미가 후대에도 이어져 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학술세미나는 경복궁과 용산의 풍수적 입지 외에도 ‘조선시대 산림정책과 풍수의 상관관계’ ‘현대 한국 명리학의 발전과정 연구’ ‘절기시간에 따른 일진의 변화 연구’ 등 동양학 관련 심도 깊은 논문들이 발표된다. 이 학술 세미나를 기획한 박정해 한양대 교수는 “동양학이 그간 시대적 변화와 사회적 상황을 외면해 스스로 고립되는 측면이 있었던 점을 반성하고, 풍수와 명리에 관한 학술적 논리체계를 구축해 적극적으로 사회의 흐름을 읽고 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라고 말했다.



안영배 기자 풍수학 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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