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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사회

9일 일하고 그만두기도…‘복지 없는’ 복지부장관 ‘흑역사’

입력 2022-07-04 13:24업데이트 2022-07-04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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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5월 3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22.5.30/뉴스1
정호영 후보자에 이어 김승희 후보자도 연거푸 낙마하면서 보건복지부 장관과 관련한 이른바 ‘흑역사’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복지부 장관은 이번뿐 아니라 역대 정권에서도 그간 유독 조기 낙마 사례가 많았고 후임 임명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보건복지부는 정치적 역량과 함께 전문성까지 필요한 부처인 데다가 1년 총지출이 100조를 넘나들기에 적임자를 찾기 까다로운 부처 중 하나다.

김영삼 정부(문민정부) 첫 보건사회부(보건복지부 전신) 장관인 의사 출신 여성 박양실 장관은 임명 9일만에 사퇴했다. 1993년 2월26일 임명됐으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지며 3월7일 사퇴했다. 보건사회부는 1994년 보건복지부로 이름을 바꿨다. 김영삼 정부는 임기 5년 동안 복지부 장관이 9번 바뀌며 평균 재임 기간이 7개월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가운데는 두번이나 복지부 장관이 됐다가 두번째는 불명예 퇴진한 사람도 있다. 민주정의당 등 주로 여당에 적을 둔 국회의원 출신 이성호 장관은 1995년 5월부터 반년간 복지부 장관을 한 후 다시 국회의원을 지내다 1996년 8월 다시 임명됐다. 하지만 부인이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3개월만에 물러났다.

정계은퇴를 선언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2013년 3월 9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당구클럽에서 열린 ‘유시민과 함께하는 시민광장 전국당구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3.3.9/뉴스1


김대중 정부(국민의 정부)에서는 주양자 초대 복지부 장관이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임명 58일만에 사퇴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유시민 장관이 청문회를 거쳐 첫 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돼 1년 3개월간 일했고 그후 다른 장관들도 불명예 낙마 없이 임기를 지속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다시 복지부 장관들의 낙마 악몽은 시작됐다. 김성이 이명박 정부 초대 복지부(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출범 100일 만에 물러났다.

당시 첫 내각이 ‘쇠고기 파동’의 책임을 지고 일괄 사퇴한 데 포함됐지만 김 장관은 후보자 때부터 논문 표절, 공금 횡령 의혹, 국적을 포기한 딸의 건강보험 부정 수급 문제 등이 불거져 논란이 많았다. 김 장관은 국회에서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했지만 이 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했다.

김 장관이 물러난 후 후임 장관이 임명되기까지 두 달여간 복지부는 장관 공백 상태에 있었다. 김 장관 후임은 전재희 장관이 원 구성 지연 등의 이유로 청문회를 거치지 않고 임명됐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2013년 9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계동 보건복지부 청사에서 이임식을 마치고 떠나며 차량에 타고 있다. 2013.9.30/뉴스1

박근혜 정부에서는 진영 초대 복지부 장관이 별 문제없이 청문회를 거친 후 임명됐지만 당시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연계하는 정부안을 놓고 ‘복지공약 후퇴’라고 반발하며 사표를 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표를 반려하는 등 만류했지만 진 장관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후임 문형표 장관 인선에도 심한 진통을 겪으며 복지부 장관 자리는 두 달 가량 공석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적임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어 출범 이후 복지부 장관을 임명하기까지 55일이 걸렸다. 5월 취임한 문 대통령은 2017년 7월3일 마지막으로 박능후 복지부 장관 등으로 1기 내각 인선을 마무리했다. 박 장관은 3년 반, 후임인 권덕철 장관이 약 1년반 동안 장관직을 수행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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