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여는 세 챕터 ‘높은 탑에 공주와’ ‘달빛 아래 기사와’ ‘사랑하는 그대와’는 차례로 이어지는 3부작이다. 무시무시한 용이 지키는 성에 갇힌 아름다운 공주를 기사가 구한다는 전형적인 서양 판타지를 뒤집었다.
우선 눈에 띄는 건 진취적이고 폭력적인 공주의 등장. 공주는 기사가 행동을 취할 때까지 기다리는 법이 없다. 먼저 프러포즈를 하고, 이웃나라 왕비의 저주에 걸려 공주를 죽이려는 기사를 장검과 단검으로 단박에 무찌른다. 탑에 갇힌 공주를 찾아와 “당신을 구하러 왔다”는 기사에게는 “구출 좋아하네”라며 망신을 주기도 한다. 이 3부작은 콜롬비아에서 스페인어로 출간될 예정이다.
표제작인 ‘여자들의 왕’은 “아주 농염하고 화끈한 여자들의 관능적 권력투쟁을 써 보고 싶었다”는 작가 말대로 팜파탈의 매력이 흘러넘친다. 모티브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국 초대 왕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2대 왕이 된 다윗 이야기. 요나단은 왕이 되지 못했고, 다윗이 사울에 이어 왕이 됐지만 두 사람은 끝까지 깊은 우정을 유지했다. 작가는 사울과 요나단, 다윗을 모두 여자로 바꿨다. 왕좌를 쟁취하기 위해 위협과 살해, 때로는 유혹까지도 서슴지 않는 세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틀을 깨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