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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독재자의 연서, 수용소의 작별…편지는 역사가 되었다

입력 2022-07-02 03:00업데이트 2022-07-02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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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함 속 세계사/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최안나 옮김/448쪽·2만3000원·시공사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한 유대인 여성 빌마 그륀발트와 남편 쿠르트 그륀발트의 생전 모습. 미국 홀로코스트 추모 박물관 제공

1912년 조지아 출신의 34세 청년 이오시프 주가시빌리는 16세 소녀 펠라게야 아누프리예바에게 연애편지를 보낸다. 두 사람은 러시아 서쪽 항구도시 볼로그다에서 만났다. 청년은 소녀를 ‘섹시한 폴랴’, 소녀는 청년을 ‘괴짜 오시프’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청년은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를 타기 직전 소녀에게 연서를 쓴다. “키스를 보낼게. 그냥 키스가 아니라 아주 열정적이고 진한 키스를 담아”라고.

청년은 나중에 자신의 이름을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으로 바꾼다. 그는 러시아 혁명에 동참해 러시아 제국을 전복시키고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을 도와 소련을 세웠다. 30여 년간 소련을 이끈 정치인이자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독재자가 됐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인간이지만 편지에선 의외로 로맨틱한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전 세계의 편지 129통을 모았다. 가족, 전쟁, 권력, 작별 등 18개 주제에 맞춰 편지를 추려 담고 해설을 덧붙였다. 프랑스 소설가 오노레 드 발자크(1799∼1850)가 자신의 팬에게 보낸 열정적인 편지, 독일 정치인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소련을 침공하기 전날 밤 이탈리아 정치인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에게 보낸 전쟁을 암시하는 편지를 읽다보면 제목처럼 우편함 속에 세계사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빌마는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떠나기 전 남편에게 쓴 편지에서 “숨을까도생각했지만 그래 봐야 가망이 없을 것 같아 그러지 않기로 했다. 이건 우리의 운명이다”라고 썼다. 미국 홀로코스트 추모 박물관 제공
편지는 역사를 바꾼다. 훗날 영국 여왕이 되는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는 1544년 ‘피의 메리’로 불리는 이복 언니 메리 1세(1516∼1558)에게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는 편지를 썼다. 반란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던 엘리자베스 1세는 감금되기 전 쓴 편지에서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만한 어떤 일도 실행하거나 조언하거나 동의하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한다. “폐하의 타고난 선하심에 희망을 건다” “폐하의 가장 충실한 신하”라는 말로 감정을 흔든다. 이 글이 힘을 발휘해서일까. 엘리자베스 1세는 죽음을 면하고 훗날 대영제국을 이끄는 왕이 된다.

뛰어난 편지는 연설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1940년 영국 정치인 윈스턴 처칠(1874∼1965)은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에게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달라고 요청하는 편지를 쓴다. 당시 처칠은 총리가 된 지 겨우 열흘밖에 되지 않았다.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한 뒤 영국 공격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처칠은 “우리는 항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소하면서도 영국이 패전한다면 “대통령께 남은 협상 카드는 오직 함대밖에 없다”고 도발한다.

편지는 영원한 작별의 인사가 되기도 한다. 1944년 유대인 여성 빌마 그륀발트는 남편 쿠르트 그륀발트에게 둘째 아들을 부탁하며 짧은 편지를 썼다. 빌마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수용된 상태였다. 빌마는 첫째 아들 존이 다리를 전다는 이유로 처형 대상으로 분류되자 어머니로서 함께 가스실에 가기를 선택한다. 빌마가 수용소 감독관에게 맡긴 편지처럼 절절한 작별편지가 또 있을까.

“트럭들이 이미 와 있고, 그 일이 시작되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전혀 동요하지 않아요. 우리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스스로를 비난하지 마세요. 사랑하는 두 사람 모두, 꼭 건강해야 해요. 멋진 인생을 살아요. 우리는 이제 트럭에 올라야 해요. 영원히 안녕.”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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