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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고서가 들려주는 조선 이야기

입력 2022-07-02 03:00업데이트 2022-07-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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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1천 권의 조선/김인숙 지음/440쪽·2만2000원·은행나무
“서울의 집들은 밀집 고깔 속에 얼굴을 감춘, 별로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행복한 농촌의 아낙네와 같다. 초가들은 매우 가난해 보이고 꾸밈도 없지만, 결코 처량하지는 않다.”

1901년 조선을 방문한 프랑스 시인 조르주 뒤크로의 책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의 일부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원조 격인 ‘국화부인’을 쓴 소설가 피에르 로티는 비슷한 시기 서울 풍경에 대해 “낮고 게딱지만 하며 우스꽝스럽고 단조로운 회색.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기묘할 정도로 묘석(墓石)같아 보이는 서울집의 지붕들”이라고 썼다.

이 책은 ‘상실의 계절’ ‘안녕, 엘레나’ ‘빈집’의 소설가 김인숙이 한국에 관한 서양 고서(古書) 46권을 다룬 ‘책 에세이’다. 그는 두 작가의 사례를 통해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오리엔탈리즘 속에서도 시선의 방향에 따라 서울 풍경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안내하는 고서들에는 ‘하멜 표류기’나 선교사들의 알려진 저술뿐 아니라 조선이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 가운데 사라진 지파 중 하나라고 주장하는 ‘조선과 사라진 열 지파’ ‘한국인은 백인이다’처럼 꽤나 낯설고 황당한 책도 있다.

소설가의 서양 고서읽기는 새 작품을 위한 여행일까. 궁금증은 책이 끝날 무렵 ‘나가는 말’에 와서야 풀렸다. 도서관 애호가인 그는 명지-LG한국학자료관(과거 연암문고)에서 1만1000권에 이르는 책, 그리고 ‘함녕전 시첩’과 운명적으로 조우했다. 이 시첩은 조선의 마지막 황제인 고종이 베푼 연회에서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 등이 한 절구씩 읊어 시를 완성한 뒤 만든 것이다. 시첩에 얽힌 사연과 작가의 시선이 흥미롭다.

여러 이유로 서가에서 침묵하고 있는 고서들에 생기를 불어넣은 것은 작가 특유의 상상력이다. 작가는 “책은 이야기를 담은 몸”이라며 “그 몸에 묻은 얼룩, 문신같이 새겨진 낙서, 찢기고 갈라진 흉터,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질 때 몸과 정신은 완성된다”고 말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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