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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송충현]대통령 행사에 총수 부른다고 ‘민간주도 경제’는 아니다

입력 2022-07-01 03:00업데이트 2022-07-01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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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충현 산업1부 기자
문재인 정부 초기였던 2017년 당시 금융당국은 “합리적 이유 없이 가산금리를 인상하는 건 사회적 비난에 직면할 수 있다”며 은행의 대출금리 산정 체계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로 대출 심사가 깐깐해지고 글로벌 금리 인상 움직임에 대출금리가 오르자 정부가 ‘시장 점검‘을 꺼내들며 금리 누르기에 나선 것이다. 지난 정부가 시장 가격에 개입했던 건 금리만은 아니었다. 카드 수수료와 보험료 등에도 정부의 구두 개입이 있었다. 부동산 대책 후속 조치로 대출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도 은행의 가격 체계에 정부가 사실상 개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상장사인 한국전력공사 역시 원료 가격 급등 탓에 적자폭이 커지는데도 정부 불허로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했다.

올해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시장을 존중하는 ‘민간주도 경제’로 정책을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취임식 만찬에 이례적으로 주요 그룹 총수를 초청하는 등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시장 친화적 행보를 이어갔다. 하지만 정부가 고물가, 고금리에 대응한다는 명목으로 최근 보여준 모습은 시장에 우호적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여당과 금융당국은 은행권이 서민의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나섰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시중은행이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간 차이로 과도한 폭리를 취했다는 비판을 받는다”며 금융권을 정조준했다. 금융감독원도 대출인하 압박에 동참하자 은행권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금리를 속속 낮추고 있다. 정유업계를 대상으로 한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유류세 인하에도 기름값이 내려가지 않는다며 1일부터 합동 점검에 나선다. 정치권에선 고유가로 역대 최대 실적을 낸 정유업계에 고통 분담을 위한 초과 이익 환수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고물가와 고금리 상황에서 은행과 정유업계가 서민 경제 안정에 보탬이 돼야 한다는 취지를 나무랄 순 없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마치 기업의 탐욕이 현재의 고물가와 고금리의 주요 원인인 것처럼 본말을 전도시키는 것도 옳은 모습은 아니다. 정유업계에선 국제 유가 폭락으로 손실을 볼 때엔 별다른 지원책이 없다가 유가 상승으로 수익이 개선되자 이익을 환수해 간다는 건 ‘여론 달래기’ 외엔 논리적으로 납득할 길이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금처럼 글로벌 통화 정책 정상화와 이례적인 글로벌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정부도 뾰족한 수를 내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이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에 대해 국제 금융 정세를 이야기하며 “근본적으로 대처할 방도가 없다”고 말한 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손놓고 있을 순 없으니 기업이라도 때리자는 건 해법이 될 수 없다. 기업 때리기가 일시적으로 국민의 속을 시원하게 할지 몰라도 궁극적으론 더 큰 폐해를 낳는다는 건 이미 지난 정부에서 증명되지 않았나.

새 정부의 민간주도 경제가 굵직한 행사 때마다 기업 총수들을 불러 면을 세워주는 선에서 그치지 않길 바란다.


송충현 산업1부 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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