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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승리’보다 ‘성공’이 더 어렵다 [오늘과 내일/정용관]

입력 2022-07-01 03:00업데이트 2022-07-01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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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법무-李행안 빼곤 총리도 장관도 안 보여
윤석열式 ‘위임 정치’ 구현해낼 팀워크 절실
정용관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일으킨 몇몇 설화 중에 대표적인 게 ‘120시간 노동’ 발언과 ‘전두환식 위임 정치’ 발언이다. 최근 주52시간제 개편 방향을 둘러싼 고용노동부 장관과 윤 대통령의 엇박자 논란을 보며 두 발언이 겹쳐 떠올랐다.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다”는 말은 120시간 발언의 트라우마일 것이다. 노동부 개편대로라면 주92시간 노동도 가능하다는 식의 보도가 나오자 “보고받지 못했다”고 한 게 장관의 발표 자체를 부인한 것처럼 비치고 말았다.

그간의 말실수 등까지 소환돼 “도어스테핑을 없애야 한다” “질문 개수를 줄여야 한다” 등등 논란으로 비화했지만, 필자의 관심은 다른 데 있다. 대통령이 아침마다 TV 앞에서 국정 현안에 대해 즉석 문답을 하는 소통 방식은 장막 뒤로 숨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당당해 보인다. 잘 지속하길 바란다. 문제는 매일같이 국정 이슈가 대통령 1인으로 집중되는 게 바람직하냐다. 이는 또 전두환이 아닌 ‘윤석열식 위임 정치’는 뭔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 축소, 책임 총리, 책임 장관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지금 모든 길은 용산으로 통한다. 집무실 현관에서 그날 한국 사회의 여론 시장이 가동된다. 장관이 챙길 만한 구체적인 정책 현안까지 대통령이 일일이 답변하곤 한다. 모두 대통령 입만 쳐다보는 형국이 됐다. 총리는 뭘 하는지, 장관은 뭘 하는지 알 수 없다. 검찰총장 역할까지 겸하는 듯한 한동훈 장관, 경찰국 신설 속도전을 펼치는 이상민 장관 정도만 확실한 ‘위임’을 받은 듯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대통령은 수시로 수석 등에게 전화를 걸어 현안을 물어본다고 한다. 새벽 1시에 전화를 받은 이도 있다고 들었다. 온갖 일이 걱정이 돼 밤늦게까지 뒤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정대(黨政大)’ 시스템은 허술해 보인다. 대통령실은 돌아가는 현안 챙기기에 급급하고, 내각은 대통령 한마디에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여당은 윤심 운운하며 내 편 네 편으로 갈려 싸우고 있다.

정권이 출범한 지 50일 지났다. 아직 세팅 기간으로 볼 수도 있지만 곧 100일이 되고, 1년 차가 지나간다. 벌써 암울한 경제 뉴스가 신문을 도배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권과는 다르다는 걸 어떻게 보여줄 건가. 민심은 변덕스럽고 심술궂다. 대통령은 뭘 집중적으로 챙길 건지, 뭘 내각 등에 위임하고 어떻게 조율할지의 국정 시스템 정비와 ‘전략’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얘기다.

클라우제비츠는 “전략에는 승리가 없고 성공만 있다”고 했다. 정치에도 적용될 만한 경구다. 선거는 ‘승리’가 목적이지만 국정은 ‘성공’이 목적이 돼야 한다. 모든 승리가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전략(戰略)에는 ‘생략하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생략하고 꼭 해야 할 것만 실행하는 것, ‘위대한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바로 전략인 것이다.(이교관 ‘한국의 대전략’)

최고 권력자는 외롭다. 그 고독의 기저엔 국가 명운을 책임진 데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고 본다. 전임자들보다 잘할 수 있을지, 더 망치는 것은 아닌지…. 늘 뒤에 숨는 비겁함도, 지나친 자신감도 두려움의 또 다른 표출일 수도 있다. 인사나 정책 추진에서 개인적 경험과 식견을 과하게 내세우진 않았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볼 일이다. 앞으로 50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른바 신(新)적폐 청산의 시간, 어디까지 싸우고 어디서 멈출 건가. 정교한 ‘성공 전략’을 세울 때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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