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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람속으로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눈물을 이해하는 것”

입력 2022-06-29 03:00업데이트 2022-06-29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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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어령 장관, 죽음 직전까지 쓴 육필원고 ‘눈물 한 방울’ 내일 출간
삶에 애착-먼저 간 딸에 미안함 등 마지막 순간까지 성찰했던 혼 담겨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 아름다워”
고인은 글뿐만 아니라 직접 그린 그림도 남겼다. 김영사 제공
시간이 지날수록 원고는 악필이 됐다. 2019년 11월 6일 원고는 정돈된 글씨로 썼다. 직접 그림을 그리고 색칠도 했다. 이에 비해 2022년 1월 23일 쓴 글은 읽기 힘들 정도로 뒤틀렸다. 검은 펜으로 삐뚤빼뚤 써내려간 글씨에선 육신의 고통이 느껴졌다. 고인은 “죽음이 죽는 순간 알게 될 것이다”라는 문장으로 마지막 원고를 끝맺었다. 30일 출간되는 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에세이 ‘눈물 한 방울’(김영사)의 육필 원고엔 죽음의 순간까지 성찰했던 고인의 혼이 담겨 있었다.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28일 열린 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에세이 ‘눈물 한 방울’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고인의 육필 원고를 공개한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고인의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2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전 장관의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은 “선생은 이른 나이부터 컴퓨터로 글을 썼기 때문에 육필원고가 많지 않다”며 “이 책은 선생이 마지막으로 쓴 육필원고를 그대로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인은 2월 26일 서울 종로구 자택에서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장남 이승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참석했다.

“육필원고에는 건강 상태 등 그 사람의 전부가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귀중합니다. 선생은 (마우스) 더블 클릭이 안 되고 (컴퓨터) 전자파 때문에 할 수 없이 노트를 썼어요. 노트를 읽다 보면 혼자 저승으로 가야 하는 인간의 외로움이 배어 있죠.”(강 관장)

신간엔 고인이 2019년 10월부터 2022년 1월까지 쓴 수필과 시 110편이 담겨 있다. 고인이 군청색 양장본 대학노트에 쓴 147편의 글 중에 의미 있는 작품을 골라 담았다. 고세규 김영사 대표는 “올 1월 3일 선생이 영인문학관(서울 종로구)으로 불러 ‘원한다면 이 노트를 책으로 만들어보라. 염치 챙기지 말고 작업해 달라’고 당부하셨다”고 말했다.

항암치료를 거부한 고인은 밤이 되면 자신의 약한 마음을 써 내려갔다. 고인은 2021년 7월 30일 글에서 어머니의 영정 앞에서 울며 “엄마 나 어떻게 해”라고 말했다고 고백한다. 자신처럼 항암치료를 거부하다 세상을 먼저 떠난 딸 이민아 목사(1959∼2012)를 향해 “내 아직 살아 있는 것이 미안하다”고 속삭인다. “살고 싶어서 내 마음은 흔들린다” “한밤에 눈뜨고 죽음과 팔뚝 씨름을 한다”고 두려움을 털어놓는다.

고인은 짐승과 달리 인간은 정서적 눈물을 흘릴 수 있기 때문에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을 위한 눈물은 무력하고 부끄러운 것이지만 나와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힘 있는 것”이라며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한다는 것”이라고 썼다. 이승무 교수는 “아버님은 죽음 직전까지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을 강조했다”며 “남겨진 그림을 보니 아버님이 어린아이로 돌아가서 동화책을 쓴 듯하다”고 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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