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노포 ‘을지면옥’ 마지막 날 30도 넘는 날씨에도 100여명 긴줄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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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표 평양냉면 전문점 중 한곳 일대 재개발로 소송끝에 문닫아
“함께한 추억 사라져” 아쉬움 호소… 가게측 “이전할곳 찾는대로 재개장”
최근 서울 유명 노포 잇따라 폐업, 전문가 “공존 위한 정책 지원 필요”

서울 중구의 노포 을지면옥의 마지막 영업일인 25일 손님들이 무더위에도 평양냉면을 맛보기 위해 가게 앞에 줄을 서 있다. 
을지면옥은 당초 오후 3시에 영업을 끝내려 했지만 손님이 몰리자 ‘재료가 소진될 때까지 영업하겠다’며 오후 4시 10분까지 문을 
열었다. 뉴시스
서울 중구의 노포 을지면옥의 마지막 영업일인 25일 손님들이 무더위에도 평양냉면을 맛보기 위해 가게 앞에 줄을 서 있다. 을지면옥은 당초 오후 3시에 영업을 끝내려 했지만 손님이 몰리자 ‘재료가 소진될 때까지 영업하겠다’며 오후 4시 10분까지 문을 열었다. 뉴시스
“마지막 날이란 말을 듣고 냉면 동호회 회원들이랑 경기도에서 왔는데 못 먹게 돼 너무 아쉽네요.”

25일 오후 6시경 서울의 대표적 평양냉면 전문점 중 하나인 중구 ‘을지면옥’ 앞에서 만난 김성혁 씨(45) 일행은 “을지면옥이 오늘로 문을 닫은 게 너무 안타깝다”며 몇 번이나 간판을 돌아보다 발길을 돌렸다. 김 씨 일행 외에도 여러 명이 아쉬움에 저녁 늦은 시간까지 가게 앞을 서성이는 모습이었다.

을지면옥은 6·25전쟁 당시 월남한 김경필 씨(여) 부부가 1969년 경기 연천군에 문을 연 ‘의정부 평양냉면’에서 갈라져 나온 곳으로, 김 씨 부부의 둘째 딸 홍정숙 씨(66)가 세웠다. 을지로에서 1985년부터 37년간 자리를 지키며 실향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왔지만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이날 문을 닫았다.
○ “마지막 냉면 먹겠다” 무더위에도 긴 줄
을지면옥이 자리한 세운지구 3-2구역은 2017년 시행사가 재개발 사업시행 인가를 받았다. 2018년 서울시가 을지면옥을 생활문화유산으로 지정하면서 한때 건물 철거가 보류됐지만 1년 후 다시 전면 철거로 방향이 바뀌면서 보상금 액수를 두고 소송전이 벌어졌다. 21일 법원이 시행사가 을지면옥을 상대로 낸 부동산 명도단행 가처분 소송 2심에서 시행사의 손을 들어주면서 자리를 비워주게 됐다. 을지면옥 측은 “이전할 장소를 찾는 대로 다시 문을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25일 을지면옥 앞에는 한낮 30도가 넘는 날씨에도 손님 100여 명이 줄을 서 순서를 기다렸다. 사장 홍 씨는 당초 이날 오후 3시에 영업을 마치려고 했지만 손님이 끊이지 않자 “재료가 떨어질 때까지 문을 열겠다”며 오후 4시 10분경 영업 종료를 알렸다. 홍 씨는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엄청나게 더운 날인데도 을지로3가역 교차로까지 줄을 섰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날 오후 30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린 뒤 냉면을 먹었다는 임창곤 씨(28)는 “단순히 음식점 하나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함께한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했다. 반면 을지면옥 30년 단골이라는 김성 씨(69)는 “아쉽지만 노후한 건물은 재개발하고, 새로운 곳에서 손님들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고 했다.
○ 줄줄이 문 닫는 서울 노포들
을지면옥 외에도 최근 서울 유명 노포(老鋪)들이 연이어 문을 닫고 있다. 올 들어서만 서울 동작구의 중식당 ‘대성관’과 서대문구 ‘통술집’, 중구 ‘을지오비(OB)베어’ 등이 줄줄이 폐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영난에 빠졌거나 재개발 또는 임대료 갈등이 불거진 것이 폐점의 원인이다. 1946년 개업 후 한자리에서 3대가 경영을 이어온 대성관은 코로나19의 타격을 이기지 못하고 이달 초 폐업했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원조로 꼽히는 을지오비(OB)베어 역시 건물주와의 오랜 갈등 끝에 올 4월 강제 철거됐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시간이 흐르면 낙후 도심의 재개발이 불가피한 상황이 생긴다”라면서도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하면서 적절히 조화될 수 있도록 시 차원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미송 기자 cms@donga.com
#37년 노포#을지면옥#마지막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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