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무성한 소문 속 묘연한 그녀의 실체

입력 2022-06-25 03:00업데이트 2022-06-25 06:44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오향거리/찬쉐 지음·문현선 옮김/480쪽·1만7000원·문학동네
X 여사, 그는 오향거리의 외지인이었다. X 여사와 그의 남편은 굉장히 비밀스러웠다. 동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의 나이, 과거 직업은 모두 베일에 싸여 있다. 주민들은 그녀의 모든 것에 대해 추측을 이어간다.

이 소설은 중국 아방가르드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찬쉐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저자는 해외에 가장 많은 작품이 번역·출간된 중국 여성 작가로,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된다. 소설 속 중심이 되는 사건은 간단하다. 비밀스러운 X 여사와 Q 선생 사이가 수상하다는 소문이 퍼진다. 가상의 공간인 ‘오향거리’의 사람들은 한데 모여 둘 사이를 추측하고, 간통의 증거를 잡겠다며 사사건건 감시한다.

특이한 점은 문체다. 소설은 구체적인 플롯이 없다. X 여사의 간통을 기둥 삼아 여러 주민들이 온갖 상상을 펼치고, 그 내용을 담아내는 게 전부다. 예컨대 소설의 초반부에서는 X 여사의 나이를 두고 한참 설전이 벌어진다.

어떤 주민은 그녀의 나이를 22세라고 말한다. 근거는 새하얀 치아, 시원스럽게 맑은 웃음소리, 용모의 수준이다. 그런데 또 어떤 주민은 그녀를 50세라고 말한다. 목주름까지 덮일 정도로 몇 센티미터 두께의 분을 바른다면서 말이다.

서사가 전개되기보다는 여러 사람의 말이 나열되는 실험적인 스타일이 처음에는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는 다양한 주제를 내포한다. 간통에 주안점을 두고 보면 소설은 도덕과 비도덕, 성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반대로 군중심리에 주목하면 외지인에 대한 배척을 말하고자 하는 듯하다.

작가는 서문에서 “사회 최하층의 보잘것없는 사람이 느닷없이 철학적 진리를 늘어놓을 때 반감을 품지 말라”며 “늘 철학이란 소소한 사람들에게 속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주민들의 휘몰아치는 각기 다른 주장을 들으면 어느새 그들과 동화되는 듯하다. 그리고 도덕, 성, 외지인 등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발견하게 된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