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경제 완전 붕괴 직전”…IMF 협상 따른 고강도 긴축 준비

  • 뉴스1
  • 입력 2022년 6월 23일 15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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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시아 스리랑카의 악화하는 경제상황이 “완전히 붕괴 직전”이라고 라닐 위크레마싱헤 스리랑카 총리 겸 재무장관이 호소했다.

지난달부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진 스리랑카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 협상에 따라 혹독한 긴축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위크레마싱헤 총리는 “이제 연료와 가스, 전기, 식량 부족을 넘어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며 이같이 호소했다.

스리랑카는 최근 몇 달간 두 자릿수 물가상승률을 기록하며 전력 부족과 식량 및 의약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필수 수입품을 조달할 외화가 바닥난 상황에서 IMF 구제금융만이 다가오는 경제참사를 피할 유일한 옵션이라는 게 위크레마싱헤 총리의 설명이다.

저성장과 고물가에 시달리는 개발도상국에서 외환보유고로 필수 수입품을 지불할 여력이 없다는 건 금융위기를 시사하는 경고의 신호라고 WSJ는 부연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중앙은행(FRB)이 속도감 있는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신흥국 부책위기는 불 보듯 뻔한 상황이 되고 있다. 국채금리가 치솟고 일부 국가의 경우 현지 화폐 가치가 바닥을 칠 수 있어서다.

지난달 스리랑카가 독립 이래 처음으로 디폴트에 빠지자 IMF 대표단이 지난 20일 들어와 금융 지원안을 논의했다.

일단 첫 협상에서 스리랑카가 요구받은 긴축안은 2주간 등교를 중지하고 비필수 정부기관 운영을 중단해 연료 소비를 아끼는 것이다.

스리랑카는 경제위기와 함께 정치적으로도 매우 혼란한 상황이다.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 끝에 과거 ‘철권통치’의 주역인 마힌다 라자팍사 총리(전 대통령)가 사임했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어수선하다.

지난달 식품값은 57.4% 폭등하고 연료 가격도 최근 몇 주 사이 2배 이상 올랐다. 기름 한 번 넣으려면 몇 킬로미터 줄을 며칠간 서야 할 지경이다.

라자팍사 전 총리의 친동생인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관광 수입이 줄고 생필품 가격이 오른 탓이라고 둘러대지만, 족벌정치의 폐해를 두고봐온 민심을 진정시키긴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스리랑카의 금융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뿌리내렸다고 지적하고 있다. 몇 년간 인프라 지출 증가로 국가 빚은 늘어나는데 포퓰리즘적 감세로 정부 수입은 줄었다는 것이다.

스리랑카 경제위기의 근본 배경으로 족벌정치의 전반적인 실책 외에 중국의 책임론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중국은 스리랑카 외채의 약 10%를 쥔 최대 대출국인데, 2005년부터 인프라 개발을 해준답시고 많은 돈을 빌려줬다.

특히 2013년 집권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주력 사업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스리랑카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에 스리랑카는 2017년 중국에 항구 한 곳의 운영권을 넘겨야 했다.

어쨌든 이제 남은 IMF 협상을 타결하는 데 있어 관건은 신속한 대외 채무 재조정을 하는 것이다. 스리랑카는 국채발행과 중국·일본 등에 유상차관으로 약 350억 달러의 외채를 지고 있다.

위크레마싱헤 총리에 따르면 금융회사 라자드와 로펌 클리포드 챈스 LLP 자문역들이 현재 스리랑카에 들어와 채무 재조정안 구상 작업을 하고 있다. 인도와 미국 재무부의 고위 대표단도 며칠 내로 들어올 예정이다. 그리고서 스리랑카는 내달 말까지 IMF와 공식 합의를 타결한다는 계획이다.

위크레마싱헤 총리는 “IMF의 공식 승인을 받으면 우리 신용이 회복될 것”이라며 “그러면 다른 나라에서 저금리로 돈을 빌리거나 유상차관을 도입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스리랑카는 석유공사(Ceylon Petroleum)가 진 채무 7억 달러를 갚지 못해 연료 수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에 도움을 주고 있는 인도에도 더이상 기댈 수 없는 상황이라고 위크레마싱헤 총리는 전했다. 인도는 이번 위기 국면에서 스리랑카에 40억 달러의 금융지원을 이미 해줬다. 그는 “인도라도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우리를 돕기만 할 수는 없다”며 “지원에도 한계는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스리랑카 정부는 추가 금융지원 요청을 위해 인도, 일본, 중국과 신용지원컨퍼런스를 개최할 예정이다. IMF 협상 타결 전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미국 정부와도 단기 차관 도입을 논의 중이다.

스리랑카 통계청은 지난 22일 발표 예정이었던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인력 부족과 데이터 기입 지연 때문이란 설명이다.

재계는 어떻게 느낄까. 스리랑카의 재벌그룹 격인 LAUGFS 홀딩스의 웨가피티야 회장은 WSJ에 “25년 이상 사업하면서 힘들었던 건 경영상 이슈나 사업역량 때문이 아니라 열악한 국가경제운용상황 때문이었다”며 “앞으로 이 나라의 미래가 너무 걱정된다. 정말 좌절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위크레마싱헤 총리는 야당을 소집해 8월 임시 예산 편성과 경제회복정책안 지원을 요청했다. IMF 협상이 타결되면 바로 수출을 진작하고 경제를 안정화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위크레마싱헤 총리는 비대해진 공공부문 예산을 ‘뼛속까지’ 삭감하고 인프라 프로젝트에 배정된 자금을 2년치 경제구제프로그램으로 전용할 것이라고 지난달 밝힌 바 있다.

국가가 쓰러지기 일보 직전 경제 키를 잡은 위크레마싱헤 총리의 개혁은 성공할 수 있을까.

시리말 아베이라트네 콜롬보대 경제학 교수는 위크레마싱헤 총리가 “소득세 인상과 공공재정 삭감, 국가 독점권 타파 등 절실하지만 과거엔 정치적으로 불가능했던 경제 개혁을 밀고 나가려 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그건 범죄”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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