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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청년 시절의 유혹[이은화의 미술시간]〈220〉

이은화 미술평론가
입력 2022-06-23 03:00업데이트 2022-06-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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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점쟁이’, 1595년.
성공한 모든 예술 거장에게는 무명 시절이 있었다. 바로크 회화의 개척자로 칭송받는 카라바조도 20대 초까지는 다른 화가의 일을 돕는 조수에 불과했다. 집시 여성이 젊은 남자의 손금을 봐주는 이 그림은 카라바조가 그린 초기 대표작이다. 청년 화가는 왜 하필 ‘점쟁이’라는 주제를 선택한 걸까?

카라바조는 밀라노에서 13세 때부터 도제 생활을 하며 화가로 훈련받았다. 그가 로마로 온 건 1592년. 스물한 살 때였다. 워낙 다혈질로 유명했던 그가 폭력 사건에 연루돼 급하게 도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변변하게 머물 곳도, 돈도 없어 극도로 궁핍한 처지였지만 뛰어난 재능 덕에 곧 길이 열렸다. 교황 클레멘스 8세의 후원을 받는 화가 주세페 체사리의 작업장에 취직해 꽃과 과일을 그리는 일을 했다. 하지만 체사리와 대판 싸운 후 조수 일마저 그만뒀다. 카라바조는 앞이 깜깜하던 시기에 ‘점쟁이’를 그렸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화면 속 집시 소녀는 기사처럼 멋지게 차려입은 소년의 손을 쓰다듬으며 손금을 봐주고 있다. 운세를 얘기해 주는 척하며 그의 반지를 슬쩍 빼고 있다. 남자는 여자의 미모와 달콤한 말, 부드러운 스킨십에 홀려 정신이 혼미한 상태다. 반지가 손가락에서 빠져나가는 것도 전혀 모른다. 세상 경험 없는 미숙한 남자가 부를 과시하고 다니다 거리에서 만난 집시 여자에게 된통 당하는 상황인 것이다. 성경 내용이 아닌 이런 일상의 교훈을 담은 풍속화는 당시 로마인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신선한 주제를 위트 있게 표현한 이 그림은 수많은 복제화가 제작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점쟁이’는 무명의 카라바조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두 번째 버전을 델 몬테 추기경이 사들인 후, 화가로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이 그림이 주는 메시지는 어쩌면 불안했던 청년 화가 스스로가 가슴 깊이 새기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힘들 때일수록 낯선 이의 달콤한 유혹과 과한 친절을 피하라!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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