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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무비줌인]‘탑건 세대’의 눈물

입력 2022-06-23 03:00업데이트 2022-06-2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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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개봉한 영화 ‘탑건: 매버릭’에서 탑건 훈련소 교관으로 돌아온 매버릭 대령(톰 크루즈).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손효주 문화부 기자
수십 년간 봉인해뒀던 추억이 쏟아지자 탄성이 터졌다. 오래전 다 끝나버린 것이 아니라 사느라 억눌러뒀던 청춘과 마침내 재회한 표정이었다. 중·노년 관객 일부는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고도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마지막 여운을 느끼려는 듯 톰 크루즈(60)가 퇴장한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탑건’(1986년) 후속편 ‘탑건: 매버릭’이 22일 개봉했다. 개봉 전 일반 시사회에는 다른 시사회보다 중·노년 관객이 많았다. 그들은 다른 영화 상영관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반응을 보였다. 웃음과 울음 사이 미묘한 표정을 하고 박수를 쳤다. 용기 내 환호도 보냈다. 요란하진 않았지만 분명한 찬사였다.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증발’해버리는 관객은 눈에 띄게 적었다.

‘탑건: 매버릭’은 ‘유구하다’는 표현을 써도 좋을 만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나온 후속편. 무려 36년이 흐른 만큼 그 기대치는 사상 최고 수준이었다. 크루즈 스스로 “정말 엄청났다”고 밝힌 중압감은 약이 됐다. 속편은 기대를 충족하고도 남았다. 전편의 영광에 묻어가려 하거나 36년 숙성된 추억을 팔아 돈벌이만 하려 하지 않은 고민이 배어 있었다. 긴 세월 축적해둔 힘을 그러모아 팬들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속편의 배신’을 강행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영화는 전편을 영리하게 오마주한다. 석양이 지는 망망대해 항공모함에서 전투기 등 각종 함재기가 이착륙하는 도입부를 보고 있으면 1986년 옛 영화관에서 탑건을 보고 있는 착각에 빠진다. 전편 첫 장면과 음향 등을 거의 그대로 재현하는 전략적 선택으로 관객들이 ‘탑건 세계’에 어색함 없이 돌아오도록 이끈다. 일부 중년 관객이 “첫 장면을 보고 젊은 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받아 울컥했다”고 하는 것도 이 때문. 중·노년 관객들은 청춘의 한복판에서 관람을 시작한다. 잠깐의 착각일지라도 젊은 시절을 마주하는 시간여행을 가능케 하는 건 미래의 기술이 아니라 노래 한 곡, 영화 한 편이라는 사실이 실감된다. 잘 만든 문화 콘텐츠는 때로 기술의 힘을 압도한다.

크루즈는 탑건 훈련소 훈련생이자 해군 전투기 조종사 매버릭 대위에서 대령 교관으로 돌아온다. 그는 존재 자체로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모든 게 거의 그대로 있다”며 관객을 위로한다. 항공점퍼를 입고 조종사 선글라스를 쓴 채 오토바이를 타고 활주로를 달리는 그의 모습은 전편과 별반 다르지 않다. 20대 대위의 자신만만함과 패기, 약간의 치기는 옅어졌지만 비교적 건재하다. 동년배 관객들은 그런 모습에 안도하고 자신감을 찾아 돌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추억팔이’에만 그쳤다면 특정 영화를 두고 평단과 대중이 이례적으로 한목소리로 호평하진 않았을 것이다. 영화는 대표적인 장면을 오마주해 관객을 몰입시킨 다음 36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한 할리우드 촬영 기술을 버무려 36년산 명품을 빚어낸다. F-18 전투기 편대가 급선회 급상승 등 곡예에 가까운 기동으로 적국의 지대공 미사일을 회피하며 비행하는 모습을 담아낸 장면은 최첨단 촬영 등 제작 기술이 곧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중·노년 관객들은 패기만만하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 매버릭과 함께 공중을 자유자재로 나는 듯한 스릴에 취한다.

매버릭은 전편의 조종사 동료 아이스맨(발 킬머)이 4성 장군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대령이다. 숨 막힐 정도로 긴장감 넘치는 비행 장면과 이를 즐기는 조종사 매버릭을 보면 비록 승승장구하지 못했더라도 소신을 가지고 한길을 걸어왔다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인생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크루즈는 최근 방한 기자회견에서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와 제대로 만들 수 있을 때 속편을 하자고 이야기했다”며 오랜 기간 고민을 거듭했음을 강조했다. “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며 함께 늙어가는 팬들에 대한 책임감도 밝혔다. 속편 제작자로도 나선 그의 속 깊은 고민은 속편의 새로운 교과서를 만들어내는 결과로 이어졌다. 현재까지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관객의 반응은 크루즈가 자신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의견이 대세다.

다소 반응에 소극적인 국내 중·노년 관객들이 이례적으로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건 이런 크루즈에 대한 찬사는 물론 청춘을 거쳐 지난 36년을 잘 버텨내온 스스로에게 보내는 찬사가 아니었을까. 크루즈는 어쩌면 그간 살아내느라 수고한 ‘탑건 세대’와 이들의 가족을 위해 속편을 헌정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손효주 문화부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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