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상의 버퍼링[동아광장/김금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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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사진, 누군가에게 자주 보내는 후배
난 내 시간 가까운 이와 직접 공유했나 싶어
SNS 업로드 외 다른 방식도 생각해 봤으면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작가분이 SNS도 하시더라고요.” 가끔 이 말을 들을 때면 “작가인데 SNS를 하는 것이 아니라 SNS 하던 사람이 작가가 된 건데요”라고 답해 왔다.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온라인에 연결되어 관계망을 이루어온 사람이 갑자기 책을 내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모든 것을 작파하기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리고 더 변명하자면 노트북과 자료들을 싸들고 종일 카페들을 전전할 때, 피크 시간을 피해 눈치껏 식당에 들어가 혼밥을 하고 있을 때 고독과 고립감을 덜어주는 것이 SNS이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SNS 이용 시간이 줄었다. 계기는 사소했다. SNS를 거의 하지 않는 후배와 밥을 먹은 일이었다. 우리는 유명 솥밥집에서 만났고 후배는 으레 우리가 그러듯 음식 사진을 찰칵 찍더니 누군가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한두 번 본 사이도 아니고 아마 전에도 그랬을 텐데 그 순간 그 행동이 무척 이례적으로 느껴졌다. SNS에 음식 사진을 종종 올려온 나도 솥밥 사진을 찍었지만 그날만은 업로드하지 않고 밥만 열심히 먹게 되었다.

식당을 나와 우리는 괜찮은 카페를 찾아 걸었다. 벚꽃 시즌이라 공원길 주변은 인파로 붐볐고 카페들은 이용 제한 시간까지 정해놓고 있었다. 다행히 창밖으로 한아름 벚꽃들이 보이는 가게에 앉을 수 있었는데, 거기서 후배는 좋은 풍경 사진을 찍어 또 누군가에게 보내주었다. 나중에 그 모습이 왜 특별하게 느껴졌을까 생각해 보니, 목적이 분명하고 내밀하며 사사로운 소통의 순간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SNS상으로 일상의 이미지를 띄워 정체가 불분명하며 그 수도 헤아릴 수 없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는 송신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행위였다.

이후 혼자 여행을 갈 일이 있었을 때 후배처럼 SNS가 아니라 가족들에게 사진과 동선을 전했다. 좀처럼 없는 일이라 적지 않은 쑥스러움을 감내해야 했다. 음식이 맛있으면 여기 정말 맛집이라고 자랑했고 윤슬을 반짝이며 청량하게 일렁이는 바다는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주었다. 혼자 누리기 아까울 만큼 깨끗하고 안락했던 게스트하우스의 세세한 풍경을 알려주고, 배경은 다양하지만 표정은 한결같은 내 모습도 찍어 보냈다. 이미지와 프레임은 SNS 업로드용과 특별히 다를 게 없었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었는데, 그런 메시지들에는 한결같이 “다음에 같이 오자” 하는 말이 붙었기 때문이었다. 이미지의 송수신 이후에도 계속될 시간을 약속하는, 깊고 실체적인 감정이 거기에는 들어 있었다.

며칠 뒤 엄마는 내가 보내준 게스트하우스 풍경 사진에서 보이던 손뜨개 물건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공간 곳곳에 주인이 직접 뜬 인형과 방석 등이 놓여 있었는데, 색 조합을 잘해 놓았다며 따라 떠보겠다는 것이었다. 도안 없이 괜찮으냐고 묻자 엄마는 그런 건 아무 문제가 아니라고 자신만만해했다. 내가 하는 경험들이 엄마의 일상에 활력이 되어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다른 수신자 중 하나인 남편에게는 혹시 귀찮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아니, 풍경도 같이 보고 걱정도 덜 되고 좋던데?”

얘기를 듣고 나자 정작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내 시간을 공유하는 데는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 일상의 쓰임새는 그렇듯 가까운 이들에게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게시물 내용을 제대로 읽지 않고도 버튼으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SNS상의 관심보다, 그렇게 현실 삶을 공유하는 이들의 반응이 내게도 더 중요하지 않았나 싶었다.

일상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바뀐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해서 온라인상으로 맺게 되는 관계망에 완전히 회의가 든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이제 SNS를 켜서 게시물을 작성하기 전에 다른 방식도 있지 않나? 하며 한번쯤 멈추게 되었다. 지금 책 사진을 찍어 업로드하는 것보다 좀 더 긴 글을 써두는 게 이 좋은 책을 끝까지 누릴 수 있는 기회 아닌가. 모처럼 하는 나의 밤 산책을 가장 반길 사람은 내 생활에 관심과 염려를 두고 있는 실제의 가까운 이들 아닌가. 그런 고심 끝에 말해야 할 대상에게 제대로 말하는 것. 그 의도적인 버퍼링은 생각보다 드라마틱하게 내 일상을 변화시키고 있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일상#버퍼링#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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