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 많은 K클래식… ‘조기발굴→다양한 경연’ 시스템의 힘[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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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콩쿠르계 한국인 열풍 왜?
올해 세계 주요 음악 콩쿠르, 한국인들이 우승 퍼레이드
동아음악콩쿠르 등 경연 통해 큰 무대에 강한 실전 경험 쌓아
기업들이 스타배출 지원 앞장… 벨기에 방송 등 다큐영화 제작

《“제16회 밴 클라이번 콩쿠르 금메달은 임윤찬에게 돌아갔습니다.” 18일(현지 시간)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베이스 공연장. 심사위원장 겸 결선 반주 지휘자 마린 올솝의 선언에 청중 전원은 순간 일제히 일어나 힘찬 환호를 보냈다. 5월 29일 핀란드 헬싱키 시벨리우스 콩쿠르, 이달 5일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우승자는 모두 한국인이었다. 시벨리우스 콩쿠르 1위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에게,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은 첼리스트 최하영에게 돌아갔다. 세계 음악계에서 한국인의 콩쿠르 정복 소식은 이제 놀랍지 않다. 지난해 5월 피아니스트 김수연이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콩쿠르 1위에 올랐고, 체코 프라하의 봄 국제콩쿠르에서는 현악4중주단 아레테 콰르텟과 피아니스트 이동하가 해당 부문 정상에 올랐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6월에는 바리톤 김기훈이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아리아 부문 우승을 차지했다. 9월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열린 부소니 국제 피아노콩쿠르에서는 박재홍과 김도현이 나란히 1, 2위를 차지했다. 12월에는 피아니스트 이혁과 서형민이 각각 프랑스 아니마토 국제콩쿠르와 독일 본 베토벤 국제콩쿠르의 정상에 올랐다.

○ “연이은 한국인 우승자, 비결은?”
2005년 폴란드 쇼팽 콩쿠르에서 임동민, 동혁 형제가 공동 3위를 차지한 데 이어 2015년 조성진의 우승은 ‘클래식 한류’의 본격적 물결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같은 해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는 임지영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에 앞서 러시아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는 2011년 여자 성악 부문 서선영, 남자 성악 부문 박종민이 나란히 우승했다.

이런 한국 음악도들의 맹활약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돼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세계 영화 팬과 음악 팬의 뇌리에 각인됐다. 벨기에 공영방송 RTBF의 음악 저널리스트 티에리 로로가 감독을 맡은 2012년 다큐멘터리 ‘세계가 놀란 한국 음악 영재들’과 2021년 제작된 ‘K클래식 세대’는 음악 영재를 조기 발굴해 혹독한 조련으로 키워내는 한국의 시스템에 주목했다. 두 다큐멘터리는 연주자들과 가족 등 주변 인물들을 통해 한국의 음악 영재들이 얼마나 성취에 열성을 다하는지 그려냈다.

○ 영재를 조기 발굴하는 사회적 시스템
로로 감독이 각종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거둔 성과의 비밀로 꼽은 ‘시스템’은 무엇일까. 음악계 관계자들은 한국의 치열한 영재 검증 및 발굴 시스템과 풍부한 무대 경험 기회를 비결로 꼽는다. 2018년 동아음악콩쿠르 경연 현장을 방문한 플로리안 림 국제음악콩쿠르세계연맹 사무총장(당시 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은 “동아음악콩쿠르로 대표되는 한국의 다양하고 발달된 경연 시스템을 거치면서 준비된 예술 영재들이 탄생한다”고 말했다.

금호문화재단의 영재 육성 프로그램도 한국인 콩쿠르 스타 배출의 중요한 밑거름으로 꼽힌다. 최근 유수의 국제콩쿠르를 정복한 임윤찬, 양인모, 최하영, 박재홍, 김수연 등 기악 연주자들은 예외 없이 금호영재 출신이다.

금호문화재단은 1998년부터 14세 이하의 음악 영재에게 무대를 제공하는 금호영재 콘서트를, 1999년부터는 15∼25세 음악가를 위한 금호영아티스트 콘서트 시리즈를 열고 있다. 이를 통해 음악 영재들은 큰 무대에서 흔들리지 않는 실전 경험을 쌓는다. 어려서 발굴된 음악 영재 중 많은 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재원이나 예원학교, 서울예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본교로 이어지는 정예 코스를 밟는다. 해외 음악가들도 음악원에서 기량을 닦지만 한국의 경우 소수 학교에 영재들이 집중되기에 경쟁의 긴장도는 한층 치열하다. 재능 있는 영재들이 스스로를 더 강하게 담금질하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해외 콩쿠르를 노리는 연주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늘어나야 한다는 진단도 나온다. 중국은 중앙정부와 성(省) 차원에서 국제콩쿠르 진출자에 대한 지원을 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경우 대기업을 중심으로 관련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현대자동차 정몽구재단은 2011년부터 문화예술 인재에게 장학금과 해외 진출 등을 지원하는 ‘온드림 문화예술 인재’ 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며 국제콩쿠르 지원자에게 연 1회 250만 원 한도의 경비를 지원한다. 올해 밴 클라이번 금메달리스트 임윤찬과 지난해 에네스쿠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첼리스트 한재민이 이 재단 장학생 출신이다.

한국메세나협회도 올해부터 국제음악콩쿠르 출전 지원 사업을 펼친다. 매년 5명 이내의 연주자에게 1인당 300만 원의 콩쿠르 출전 비용을 지원한다.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및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의 피아노·바이올린 본선 진출자가 대상이다.

LG는 ‘K클래식의 수도’ 서울에서 열리는 유일한 국제음악콩쿠르인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를 2007년부터 협찬해 오고 있다. 한국인으로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2009년), 테너 김범진(2013년), 피아니스트 한지호(2014년), 바리톤 김기훈(2016년), 피아니스트 신창용(2017년),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2018년) 등 국내외에서 맹활약 중인 신예들을 세계무대에 소개해 왔다.

○ 왜 콩쿠르에 더욱 주목하나
예술가들이 기량을 겨루는 경연은 고대 그리스부터 존재했다. 근대의 대표 음악 경연으로는 연주가가 아닌 작곡가들을 대상으로 한 프랑스의 ‘로마대상’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콩쿠르는 현대의 산물이다. 가장 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쇼팽 콩쿠르가 1927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는 1937년,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1958년 각각 창립됐다.

이유는 오늘날 연주가들의 연주 영역과 영향 범위가 이전과 달라진 데 있다. 19세기 중후반까지 연주가들은 국가와 지역에 속한 존재였다. 전 유럽에서 명성을 떨치는 연주가들도 자신의 도시에서 명성을 쌓은 뒤 그 명성을 이용했다. 1900년대 음반 산업의 대중화와 1920년대 라디오의 보급으로 이 같은 환경은 변화를 겪었다. 연주가들은 전 세계를 다녔고 유명 연주가들의 연주는 세계인이 청취했다. 객관적 공정성을 보장하는 경연이 필요했다.

오늘날 콩쿠르는 경연을 통한 등위 산정만이 목적이 아니다. 세계의 음악 매니지먼트 매니저와 공연장 감독들이 주목할 만한 새 얼굴을 기다리는 음악 산업계 신진 발굴의 장이다.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의 경우 세계 유명 연주가와 음악 교수뿐 아니라 각국 주요 극장장, 알랭 랑스롱 워너클래식 사장을 비롯한 대형 음반사 최고경영자(CEO) 등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해 미래 유망주를 꼼꼼히 가려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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