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1만원, 수박 2만원’ 시대, 서민경제 습격한 런치플레이션 [광화문에서/박선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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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산업2부 차장
박선희 산업2부 차장
연초부터 경고가 지속됐던 인플레이션이 거리 두기 해제와 대면경제 회복에 접어든 올여름 본격화되고 있다. 휘발유부터 원자재에 이르기까지 오르지 않은 분야가 없지만, 매일 먹어야 하는 식료품의 가격 인상이 서민들에게 주는 고통은 좀 더 직접적이다.

특히 식품 물가 인상이 외식 물가로 전이되면서 도심 식당가 밥값은 살벌한 수준에 이르렀다. 1970년대 대(大)인플레이션(Great Inflation) 시기를 연상시키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미국에서 만들어진 ‘런치플레이션’(런치+인플레이션)이란 신조어는 한국으로 넘어오자마자 유행어가 됐다.

여름철 인기 메뉴인 냉면은 요즘 1만 원을 훨씬 웃돈다. 서울의 한 유명 평양냉면집에서는 1만6000원까지 한다. 맛집이라 특별히 더 비싸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사이트 참가격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냉면값은 1만269원으로 평균 1만 원을 넘겼다. 더위에 가볍게 즐기던 냉면 가격의 수직상승은 ‘밥 한번 먹자’는 인사가 부담스러워진 시대를 실감케 한다.

외식을 줄인다 해도 식품 물가의 고삐가 풀린 상태라 가계부가 빠듯한 건 마찬가지다. 일선 마트에선 수박 한 통 가격이 2만 원을 넘겼다. 일교차로 인한 작황 부진과 인력 부족에 따른 재배 면적 감소 때문이다. 제철과일마저 이렇게 가격이 고공행진하는 시대에 ‘장보는 게 겁난다’는 말은 괜한 엄살이 아니다. ‘장포족’(장보기를 포기한 사람들)도 속속 생기고 있다.

최근의 물가 급등엔 국내외적 요인이 혼재돼 있다. 이상 기후와 작황 부진 등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폭등에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붕괴 등이 겹쳤다. 이른바 ‘푸틴 플레이션’으로 불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더해지며 상황은 더 악화됐다.

문제는 이런 런치플레이션에 직격탄을 맞는 건 언제나 가장 취약한 계층이란 점이다.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의 월평균 가처분소득 가운데 식품비가 차지한 비중은 42.2%에 달했다. 가처분소득의 절반가량을 식비로 쓴 셈이다. 소득 상위 20%의 평균 식비 비중(13.2%)의 3배가 넘는다. 전체 가구 평균(18.3%)보다도 훨씬 높다.

생활 물가가 큰 폭으로 오를수록 저소득층의 실질 구매력은 급격히 약해질 수밖에 없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시름도 깊어진다. 소상공인 인터넷 카페에는 원가 압박을 이기지 못해 메뉴 가격을 소폭 올리면서도 경쟁에서 뒤처질까 걱정하는 글이 넘친다. 코로나19로 인한 어려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물가 부담으로 폐업을 걱정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취임 전부터 새 정부의 첫 시험대는 물가 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됐지만, 아직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플레를 잡기 위해 불가피해진 미국발 금리 인상은 금융 부담과 경기 침체 등으로 또다시 서민부터 옥죄고 들 우려가 높다. 갈수록 난제가 돼가고 있는 런치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정책적 리더십이 절실한 때다.

박선희 산업2부 차장 teller@donga.com


#런치플레이션#서민경제 습격#냉면 1만원#수박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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