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식 실전공부법 [오늘과 내일/이철희]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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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화 내세우다 ‘방사포 논란’ 낳은 尹정부
쉽고 뻔한 길만 찾지 말고 전략적 고투해야

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지난 일요일 북한이 서해로 방사포 5발을 쐈다는 사실을 군 당국이 10시간 뒤에나 공개한 것은 의아한 일이었다. 국가안보실은 앞서 북한의 군사행동에 대응하는 새 정부의 3원칙 중 첫 번째로 “발사체가 미사일인지, 방사포인지, 탄도미사일인지 정확히 밝히겠다”고 했다. 그랬던 정부가 잇단 미사일 도발에 핵실험 임박설까지 나온 민감한 시기에 북한의 군사동향을 공개하지 않았다가 야당의 정치적 공세를 자초했다. 윤석열 대통령 말대로 “미사일에 준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면 그대로 알리고 영화 관람도 갔다면 됐을 텐데 말이다.

물론 북한이 뭐든 쏘면 무조건 “도발”이라며 맞대응할 일은 아니다. 특히 방사포(다연장로켓)는 야포와 미사일 사이에 있는, 그 경계가 애매한 무기체계다. 대부분 휴전선 인근에 배치돼 서울 등 수도권을 기습 공격하기 위한 것인데, 신형 초대형 방사포는 화력이나 사거리에서 웬만한 탄도미사일을 능가한다. 이번 방사포는 사거리가 짧은 구형이어서 호들갑 떨 일은 아니었다지만, 전임 정부와는 다르다던 새 정부로선 스타일을 구기게 됐다.

그런데 정작 주목할 대목은 윤 대통령의 대응이 이전과 크게 달랐다는 점이다. 북한은 새 정부 출범을 50일 앞두고도 방사포 4발을 쐈다. 당시 윤 당선인은 특유의 상기된 톤으로 “방사포는 9·19 (남북 군사)합의 위반 아닙니까? 명확한 위반이죠?”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뿐이 아니다. ‘합의 위반은 아니다’는 국방부를 향해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우리 국민 머리 위로, 우리 영공을 거쳐서 날아갔다면…”이라며 있지도 않은 ‘영공 침범’을 거론했다. 그 위세에 국방부는 입을 다물었고, 그렇게 넘어갔던 논란이 부메랑이 돼서 돌아왔다.

대선후보 시절 9·19 군사합의 폐기 가능성까지 거론했던 윤 대통령이다. 그래서 취임 후 9·19 합의는 폐기 수순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았다. 사실 그 합의는 ‘안보 포기 서약’이라는 보수의 공세 대상이었고 북한의 파기 위협으로 이미 사문화됐다는 평가도 많다. 다만 그것이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막는 완충장치 역할을 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새 정부가 “폐기는 아니다”라고 밝힌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무력시위를 넘어 북한이 노릴 지점도 9·19 합의에 완충지대로 설정된 휴전선과 북방한계선(NLL) 일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은 일찍이 ‘가치와 국제규범, 법치에 기반을 둔 외교관계’를 내세웠다. 그런 칸트식 이상론이 무정부적 힘의 질서가 지배하는 국제 현실에서,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사는 한반도 현실에서 얼마나 통할지 의문이다. 가치와 규범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외교안보에서까지 범죄자 단죄하듯 가르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동맹과 그 진영을 향한 잘 뚫린 길을 내달리기는 쉽다. 하지만 그에 따른 마찰과 파열을 이겨낼 힘은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작금의 북한 핵·미사일 폭주는 5년 전 문재인 정부 초기 때와 판박이다. 북한 도발에 대응하는 정부의 수단이나 방법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현 정부가 “말이 아닌 행동”을 내세우며 전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지만, 달라진 말투 외에 달리 뾰족한 대안이 있을까. 윤 대통령으로선 국가안보를 책임진 자리의 무게, 나아가 녹록지 않은 현실을 실감하는 요즘일 것이다. 면밀한 현실 진단과 대응, 그 반작용까지 내다본 전략적 고투가 필요하다. 외교안보는 겪으면서 배울 수 있는 실전공부가 아니다. 9수는커녕 재수도 허용하지 않는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윤석열식 공부법#차별화#방사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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