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격하하는 한일 안보전략 바로잡자[특파원칼럼/이상훈]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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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섞인 안보정책으론 양국 다 실패
가치관 공유하는 대국적 자세로 나서야

이상훈 도쿄 특파원
이상훈 도쿄 특파원
“블라디미르, 당신과 나는 같은 미래를 보고 있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2019년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했다고 스스로 밝힌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러시아 땅이 된 쿠릴열도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영유권을 돌려받겠다며 아베는 푸틴과 27번이나 정상회담을 하는 공을 들였다. 바뀐 건 없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내다볼 순 없었겠지만 옛 소련 시절부터 예측 불가 외교술을 펼쳐온 러시아 같은 나라에 영토를 양보 받겠다며 교섭한 일본 외교정책을 전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일본 외교안보 전략의 또 다른 대표 사례가 대(對)한국 정책이다. 2018년 12월 일본 정부는 방위정책 기본 방침인 ‘방위계획대강(大綱)’에서 한국과의 안보협력 순위를 2번째에서 5번째로 낮췄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노동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호주 인도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밑으로 한국을 격하시켰다.

반도체 소재 수입 규제와 마찬가지로 감정 섞인 정책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전략적 연계 강화 대상국으로 삼은 인도는 미국의 회유에도 러시아와 친교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올해 일본이 의장국으로 주재한 쿼드(Quad) 정상회의는 인도 때문에 러시아를 강하게 비난하지 못했으면서도 인도에 이렇다 할 문제 제기도 못 했다. 국방비 기준 세계 3위 군사대국 인도는 애초 일본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아세안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불과 한 달 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직접 아세안 각국을 찾아 중국 및 러시아 압박에 동참을 촉구한 것을 무색하게 하는 발언들이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쏟아졌다. 아세안 최대 국가 인도네시아의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장관은 “미국이 여러 번 우리를 도왔지만 중국도 우리를 돕는다. 모든 이웃과 강대국 이익을 존중한다”며 등거리 외교를 펼쳤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해군기지를 세우려고 하는 캄보디아는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고 해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까지 했다.

역사도, 지정학적 배경도, 가치관도 다른 나라들과 협력한다며 한국을 외면하는 일본을 미국이 곱게 볼 리 없다. 아사히신문은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일본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에 불만을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몇 발 쐈는지조차 제때 파악하지 못하면서 ‘한국에 고개 숙이지 않겠다’며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는 게 일본 현실이다.

한국도 마냥 일본을 비난할 위치는 아니다. “죽창가를 부르다 여기까지 왔다”(윤석열 대통령)는 말대로 지난 정부 핵심 인사들은 전형적인 편 가르기 외교를 폈다. ‘국방백서’에서는 일본을 동반자에서 이웃 국가로 격하하고 ‘북한은 적(敵)’ 표현을 삭제하면서 안보 우선순위가 뒤죽박죽됐다. 갈등이 있어도 한미일 협력은 전략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안보전략 기본 틀이 흔들렸다.

한일 양국은 역사 갈등으로 감정다툼만 하다 몇 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전략에 갇혀 왔다. 역사 문제로 싸울 땐 싸우더라도 안보 문제만큼은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대국적 자세로 대화하며 관계 개선을 해야 한다. 스페인 마드리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서 만날 한일 두 정상이 과거 허물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갖고 마주 앉길 바란다.

이상훈 도쿄 특파원 sanghun@donga.com


#한일 안보전략#가치관 공유#대국적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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