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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천사를 데려가나… 여보, 집 와야지” 방화 희생자 가족들 오열

입력 2022-06-13 03:00업데이트 2022-06-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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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변호사 사무실 희생자 합동발인
12일 오전 7시경 대구 중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한 유족이 희생자 영정 사진을 든 채 운구를 기다리고 있다. 이날 이 장례식장에선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 희생자 5명의 발인이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대구=뉴시스
“천사를 먼저 데리고 가십니까! 천사를….”

침묵이 감돌던 12일 오전 7시 대구 중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 희생자 5명의 발인식이 엄수되자 누군가 소리쳤다. 이 말을 들은 유족 일부는 눈물을 흘렸고, 일부는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물었다. 한 유족은 영구차에 오른 관을 손으로 여러 차례 내려치며 비통함을 드러냈다.
○ 눈물바다 이룬 발인 현장
이날 발인식은 11일 먼저 발인을 진행한 1명을 제외하고 희생자 5명에 대해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지인과 유족들은 희생자들을 운구차에 실을 때마다 “억울해서 우야노”, “착한 놈을 왜 먼저 데리고 가느냐”며 가슴을 쳤다.

아무 관계가 없는 방화 용의자 천모 씨(53)에 의해 숨진 김모 변호사(57)의 아내는 남편의 관을 쓰다듬으며 “자기야, 집에 와야지…”라고 목 놓아 외쳤다. 같은 사무실을 쓰는데 사건 당시 출장을 가 목숨을 건진 배모 변호사(72)는 “가슴이 너무 무거워 뭐라 표현할 길이 없다”며 “어떤 식으로든 유족들에게 위로가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천 씨는 민사소송 패소에 앙심을 품고 상대편 번호사인 배 변호사를 겨냥해 방화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김 변호사와 함께 흉기에 찔린 박모 사무장(57)의 지인들은 “김 변호사와 박 사무장은 40년 이상 우정을 쌓아온 지기”라며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나서다 둘 다 흉기에 찔린 것 같다”고 말했다.
○ 복도부터 휘발유 뿌리고 사무실 진입 후 불 질러
경찰은 현장(수성구 우정법원빌딩 203호)에서 확보한 등산용 칼, 김 변호사와 박 사무장의 몸에서 발견된 상처 등을 근거로 천 씨가 불을 지른 후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천 씨는 2층으로 올라가 복도부터 휘발유를 뿌리기 시작했으며 203호 진입 후 곧바로 불을 지른 것으로 보인다. 검은 연기가 순식간에 퍼진 탓에 천 씨 역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변호사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돌진하며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의 한 법조인은 “천 씨가 여러 건의 송사를 경험하면서 변호사 사무실의 대략적인 구도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천 씨가 배 변호사를 확실히 죽이기 위해 휘발유와 함께 흉기도 준비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천 씨를 포함한 사망자 7명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직접적인 사망 원인은 화재로 인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나타났다.

천 씨가 불을 낸 시점(오전 10시 53분)부터 소방차 도착(오전 11시 1분) 전까지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는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경찰 관계자는 “방화 현장에 폐쇄회로(CC)TV가 없고 목격자도 없다”며 “피의자가 사망한 사건이라서 증거물 외에는 사실관계를 파악할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한편 천 씨는 주상복합아파트 시행사 측과 벌인 소송 외에 공동시행사인 투자신탁사와도 민사소송을 벌이고 있었고, 9일 범행 불과 1시간 전 항소심에서 패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패소 직후 집으로 돌아간 천 씨가 곧장 휘발유 등을 챙겨 우정법원빌딩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범행 전날에는 시행사 대표를 비방한 혐의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기도 했다.

대구=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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