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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러軍, 점령 한달새 650명 총살… 은신처 찾아내 여성 성폭행”

입력 2022-06-11 03:00업데이트 2022-06-11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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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학살’ 우크라 부차 르포]
“러軍, 피란차량에 총탄… 남편 그자리서 숨져”
주민 갈리나씨 눈물 속 ‘지옥’ 증언
러軍에 살해된 부차 시민 추모비 9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북서쪽 소도시 부차의 교회 뒷마당에 마련된 추모비 앞에서 두 시민이 기도하고 있다. 이곳에서 러시아군 점령 기간 살해돼 암매장된 민간인 시신 150여 구가 발견됐다(큰 사진). 작은 사진은 이곳에 묻힌 희생자의 신원 확인을 위해 올 4월 크레인으로 시신을 인양하는 장면이다. 부차=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AP 뉴시스
부차=김윤종 특파원
“러시아군 장갑차가 우리에게 (총탄을) 마구 쐈어요. 내 남편이, 함께 피란 가던 친구의 여섯 살, 열 살 아이들이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9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약 27km 떨어진 소도시 부차. 주민 갈리나 씨(56)는 자신이 겪은 ‘지옥’을 얘기하다 말문을 닫고 눈물을 흘렸다.

올 2월 24일 침공한 러시아군이 키이우로 진격하면서 길목의 부차부터 짓밟았다. 갈리나 씨는 포격으로 주변 주택들이 무너져 내리자 집을 떠나기로 했다. 3월 4일 오전 7시 그와 친구 가족은 각자 차를 타고 서쪽으로 피란길에 올랐다.

500m도 못 가 러시아군 장갑차가 나타났다. 장갑차는 민간 차량인 줄 뻔히 알면서도 갑자기 총탄을 퍼부었다. 자동차 앞 유리를 뚫고 들어온 총알은 갈리나 씨 남편과 친구 차의 두 아이를 맞혔다. 갈리나 씨는 “세계가 러시아와 (블라디미르) 푸틴(대통령)의 전쟁범죄를 단죄하도록 내 이야기를 꼭 기사화해 달라”며 “끔찍한 불행의 기억을 다시 꺼낸 이유”라고 힘줘 말했다.

러시아군이 33일간 점령한 부차에서는 암매장된 민간인 시신 300여 구가 발견되는 등 집단학살 정황이 드러났다. 동아일보는 한국 언론 중 처음으로 부차를 찾았다.



‘집단학살’ 우크라 부차 르포
부차 곳곳서 암매장 시신들 발견… 상당수 양손 뒤로 묶여 머리 관통
100~200m마다 하나꼴 무너진 건물… 참혹했던 침공, 생생히 보여줘
시민들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 러 전쟁범죄 알리려 인터뷰 응해”




“여기입니다. 너무 비극적인 일이라…. 차마 입에 담기도, 다시 생각하기도 힘드네요.”

9일 우크라이나 부차의 한 교회 뒷마당에는 잔디가 벗겨지고 평평한 황토색 흙바닥이 드러난 공간이 있었다. 한쪽에 강철 십자가 모양 추모비가 서있고 그 아래 화분과 꽃이 놓여 있었다. 시민들은 러시아군이 민간인 150여 명을 살해하고 그 시신들을 암매장했던 곳이라고 말했다. 여기만이 아니다. 부차 곳곳에서 암매장 시신들이 발견됐다. 상당수가 양손을 뒤로 묶이고 머리를 총알로 관통당해 검은 비닐에 돌돌 말린 상태였다. 반쯤 타거나 팔다리가 잘린 시신도 적지 않았다. 학살의 현장이다.
○ 주민들 “집단학살 악몽은 계속”
부차 시민들이 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3월 러시아군 침공 당시의 악몽을 설명하고 있다. 이들 뒤로는 러시아군 미사일에 파괴된 아파트가 보인다.
기자가 이날 만난 부차 시민 10여 명은 “남겨진 사람들은 여전히 지옥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올레그 씨는 “무차별 포격이 지금도 생각난다. 여전히 무섭고 힘든 시간이다. 러시아군은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 좀비 같았다”며 몸서리쳤다.

인구 3만7000명의 부차는 주변 환경이 아름답고 고즈넉해 우크라이나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꼽혔다. 그러나 이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극적인 장소가 됐다.

수도 키이우 공략에 나선 러시아군은 침공 사흘 뒤인 올 2월 27일부터 3월 31일까지 부차를 점령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부차를 탈환한 직후 집단학살(제노사이드) 정황이 세상에 알려졌다. 안드리 네비토우 키이우 경찰청장은 “점령 기간 부차에서 숨진 1000명 넘는 민간인 가운데 약 650명은 미사일 포격이나 포탄 파편이 아닌 러시아군이 쏜 총에 ‘처형’됐다”고 말했다.

부차가 겪은 비참함, 비통함, 분노는 기자가 부차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느껴졌다. 부차를 알리는 표지판은 기둥에서 떨어져 땅에 널브러져 있었다. 전쟁의 상처는 시내 여기저기 가득했다. 2월 24일 러시아 침공 직후 기자가 취재한 남부 체르니우치, 서부 르비우에서는 포격에 무너진 건물이 드물었다. 하지만 부차는 거리 100∼200m마다 하나꼴로 아파트와 주택을 비롯해 약국 쇼핑몰 식당 같은 건물이 철골 뼈대만 남거나 무너져 있었다. 곳곳에 불타거나 총알 세례를 받은 자동차, 죽은 이들의 옷과 신발도 버려져 있었다.

미사일에 맞아 한쪽 외벽이 날아간 아파트 앞에서 만난 라리사 씨는 “지옥 같던 당시 상황이 요즘도 악몽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3월 초 아파트에서 자고 있던 라리사 씨 부부는 굉음에 깼다. 전투기 헬기 소리, 거기서 발사된 미사일 소리 직후 일대 아파트들이 파괴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포함한 주민 100여 명은 황급히 지하 은신처로 뛰어 내려갔다. 물도, 식량도, 전기도 없고 화장실도 1개뿐인 그곳에서 며칠을 지냈다.
○ “러軍, 은신처 찾아내 여성 성폭행”
부차 시민 갈리나 씨(오른쪽)가 동아일보 기자에게 3월 초 러시아군의 무차별 민간인 총격에 사망한 남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밤에 몰래 나가 먹을거리를 찾아야 했다. 포탄에 맞은 아파트에 살던 알렉산드르 씨는 “굶주린 아이들이 밖에서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녔다. 촛불을 켜고 신에게 ‘우리 가족을 살려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아이들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굶주림은 나은 상황임을 곧 깨달았다. 은신처를 찾아낸 러시아군이 들이닥쳐 젊은 여성들을 끌고 갔다. 주민들은 그들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던 시민들은 고개를 떨구거나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알렉산드르 씨는 “생각하기도 싫고, 죽고 싶은 심정이지만 러시아의 전쟁범죄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인터뷰에 응했다”며 “더 이상 부차 같은 비극이 없게 해달라”고 했다.

‘부차 학살’ 이후 유엔과 국제형사재판소(ICC) 등은 러시아군 전쟁범죄를 조사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전범 재판에 세워야 한다”고 몇 차례 주장했다. 하지만 푸틴을 재판대에 세울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부차=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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