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우폴 19세 성폭행 생존자 증언…유엔 “빙산의 일각”

  • 뉴시스
  • 입력 2022년 6월 9일 16시 21분


코멘트
러시아군이 완전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동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체첸군에 의해 성폭행 피해를 입은 19세 우크라이나 생존자의 증언이 공개됐다.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마리우폴에서 체첸군 병사 2명에게 성폭행당한 카테리나(19) 증언을 보도했다.

카테리나는 러시아 침공 초기부터 이웃들과 함께 마리우폴 한 지하실에 숨어 지냈다.

그러던 중 지난 3월26일 해 질 무렵 두 명의 병사가 은신처에 들이닥쳤다. 러시아군을 지원하는 악명 높은 체첸공화국 병사들이었다. 어깨에 소총을 메고 있었고, 술에 취한 것으로 보였다.

이들은 “서류를 확인해야 한다”며 주민들의 신원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카테리나가 서류를 가져오기 위해 일어서자 한 병사는 카테리나를 멈추게 한 뒤 볼에 손을 댔다.

병사는 이름을 물어봤고, 카테리나는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감지했다. 해당 병사는 “검사할 게 있다”며 카테리나에게 위층으로 올라오라고 했고, 카테리나는 올라가기 무섭다며 거절했다.

하지만 병사는 아파트 2층 빈집으로 카테리나를 데려갔고, 몸을 숙여 소파에 손을 얹으라고 지시했다. 카테리나는 “그 병사는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보여줬고, 난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며 “하지만 날 죽일 수 있다며 협박했다”고 설명했다.

카테리나가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병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테리나는 “병사는 날 들어 올려 원하는 대로 했다”고 전했다.

카테리나는 마리우폴을 탈출해, 러시아를 거쳐 현재 폴란드 피란민 센터에 체류 중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석 달 반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에선 러시아군에 의한 성범죄가 대대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개전 초기 “러시아 병사들에 의한 성폭행 사건이 수도 없이 많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가해자 처벌을 위해 피해 사례를 수집하고 있지만 난항을 겪고 있다. 마리우폴 등 러시아군에 점령된 지역에선 정보 수집에 어려움이 있고, 피해자들도 트라우마와 두려움으로 목소리 내는 데 주저하고 있다.

이리나 베네딕토바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은 “점령 지역에서 성범죄를 조사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며 “피해자들이 겁 은 상태여서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피란민을 가장 많이 수용한 폴란드에선 검찰이 1000건 넘는 전쟁 범죄 증언을 수집했지만, 이 중 성폭력 관련 사건은 한 건도 없던 것으로 전해졌다.

카테리나도 그중 한명이었다. 카테리나는 피란민 센터를 취재 중인 WP에 주저하며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수사 당국에 신고할 준비는 되지 않았다고 했다.

카테리나는 언젠가 신고할 계획이지만, 가해 병사 얼굴이나 관련 정보를 몰라 처벌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정 폭력 및 성차별 신고 센터인 ‘라스트라다 우크라이나’의 타케리나 체레파하 국장은 “당국에 공식적으로 알리길 꺼리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라며 “우리에게 접촉한 피해자 대부분 경찰이나 검찰에 신고하길 꺼린다”고 설명했다.

체레파하 국장은 러시아 침공 이후 강간 관련 신고 전화를 16회 받았으며, 한 건을 제외하고 피해자는 전부 여성이라고 전했다. 3명은 미성년자였으며, 가장 어린 피해자는 13살이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자체 수집 중인 사건 규모를 밝히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유엔인권감시단은 현재까지 성폭력 관련 신고 124건을 접수했다며, 이 중 24건은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프라밀라 패튼 유엔 성폭력 특별대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지속적이고 대규모로 과소 보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마틸다 보그너 유엔인권감시단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성범죄가 무기로 조직적으로 사용됐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러시아군이 성범죄를 조정하거나 지시했다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당국이 러시아 규탄 감정을 자극하기 위해 성범죄 피해 사실을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최근 류드밀라 데니소바 의회 인권담당관이 근거 없고 선정적인 성범죄 내용 전달에 주력하고 있다며 해임안을 표결에 부치기도 했다.

당국자들은 피해자들에게 안전이 보장되면 더 많은 사례를 들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최근 “러시아군이 지하실 문을 부수고 들어와 자녀 앞에서 엄마를 성폭행했다는 복수의 보도가 있다”며 “장면이 러시아 군인들에 의해 촬영되기도 했다”고 밝혔었다.

바실리 네벤자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군에 의한 성폭력 고발이 계속되고 있지만, 어떤 증거도 제시되지 않았다”며 부인했다.

[서울=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