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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IT/의학

나사(NASA) 본부가 워싱턴에 있는 이유는…[이진구 기자의 대화, 그 후- ‘못 다한 이야기’]

입력 2022-06-04 13:00업데이트 2022-06-0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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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편
4월 말 누리호 2차 발사를 한 달여 남기고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을 인터뷰했습니다. 순수우리기술로 제작된 누리호는 개발 착수 11년 여 만인 지난해 10월 21일 1차 발사했지만 아쉽게도 궤도진입을 못했지요. 그 누리호가 15일 2차 발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1차 발사 때 나타난 문제점 외에 다른 문제는 없다고 하는군요. 8월에는 달 궤도선도 발사됩니다. 성공하면 우리 손으로 만든 궤도선이 달을 도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죠. 이에 발 맞춰 새 정부는 국정과제로 한국형 나사(NASA·미 항공우주국)인 항공우주청 신설할 계획입니다. 아직은 정부조직법 개정도 되지 않은 상태고, 넘어야할 산도 많지만 누리호 2차 발사가 성공하면 추진에 탄력을 받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왜 우리는 기술 개발보다 아직 설립도 되지 않은 항공우주청 유치전에 더 관심을 갖는 걸까요. 항공우주청 유치 전에는 대전과 경남 사천이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천은 항공우주 기업들이 많고, 대전은 KAIST, 항공우주연구원 등 연구기관이 많아 시너지 효과를 거두는데 서로 자신들이 최적지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직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만 지난달 안철수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은 사천 손을 들어준 바 있지요. 이를 근거로 사천시는 전국노래자랑 사천시 편 포스터에 ‘항공우주청 사천 설치 확정 기념’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지자체들의 우주청 유치 전을 보다가 문득 자타가 공인하는 항공우주분야의 최고봉인 미국 나사 본부는 어디 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영화에서 늘 “여기는 휴스턴”이란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나사 본부가 당연히 관제센터가 있는 텍사스 휴스턴에 있는 줄 알았지요. 그런데 나사는 대통령 직속 기관이란 특성상 워싱턴D.C.에 본부가 있더군요. 메리 W. 잭슨 나사 헤드쿼터 빌딩(Mary W. Jackson NASA Headquarters building)이라고 불리는데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로 유명한 흑인 여성 공학자인 메리 W. 잭슨의 이름을 땄다고 합니다. 나사 본부와 휴스턴 관제센터(정식 이름은 존슨 우주 센터)는 직선거리로 1962km입니다.

아폴로 11호가 발사된 케네디 우주센터는 플로리다 케이프 커내버럴에 있습니다. 나사 본부와는 직선으로 1209km 떨어져있고, 나사의 연구를 진행하는 제트추진연구소는 캘리포니아 로스엔젤레스 북쪽 칼텍에 있습니다. 워싱턴과 LA입니다. 굳이 거리를 설명해야할까요? 3700km입니다. 앨라바마주 헌츠빌에 있는 마셜 우주비행센터는 그나마 좀 가깝(?)군요. 969km네요. 우리 지자체들이 주장하는, 가까이 있어야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주장이 맞다면 나사의 본부 위치선정은 최악인 것 같습니다.

지역 불균형은 점점 더 심화되고, 뾰족한 경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도 부족한 지자체가 정부 기관을 하나라도 더 유치하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본질은 제대로, 가장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곳에 항공우주청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이제 지방선거도 끝났고, 며칠 후 누리호 2차 발사가 성공하면 본격적으로 항공우주청 설립 논의가 시작될 것입니다. 당연히 우주청의 목표와 역할, 세부 기능 등이 순차적으로 정리되겠지요. 우주청의 입지는 이런 상위 개념들이 먼저 정해진 후에 그 기능을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찾아 정하는 게 순서가 아닌가 합니다.

인터뷰 마지막에 이상률 원장에게 40년 가까이 우주개발 분야에서 일했는데 가장 아쉬운 게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이 원장은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기는 했지만 우리가 대체로 추격형 대형 프로젝트를 많이 하다보니 30~40년 뒤를 준비하는 게 굉장히 부족했다”고 말하더군요. 당장은 써먹지도 못하고, “뭐 그런 걸 하고 있어?”라는 말을 듣더라도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지금은 생각도 못하는 것에 예산과 인력을 투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도 남들이 닦아놓은 길만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앞으로 인류가 가야할 길’이라고 이정표를 제시하고 맨 앞에서 덤불을 헤쳐 가며 길을 내는 역할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칼 세이건은 저서 ‘코스모스’에서 “‘우주라는 바다’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 우리가 이 바닷가에 서서 스스로 보고 배워서 알아낸 것이다. 직접 바닷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것은 겨우 발가락을 적시는 수준이었다. 아니, 기껏해야 발목을 물에 적셨다고나 할까”라고 했습니다. 남들보다 늦은 만큼 더 빨리 첨벙첨벙 뛰어 들어가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정치와 지역 이기주의 때문에 본질적이지도 않은 청사 유치 전에 발목이 잡혀 국가적 에너지를 소모한다면 너무 안타까울 것 같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워싱턴 D.C 나사 본부와 휴스턴 관제센터 간의 거리는 1962km입니다. 서울과 대만 타이베이는 1483km지요. 윤석열 대통령이 항공우주청 입지 결정 때 왜 나사가 본부를 워싱턴에 뒀는지 깊이 참고해 결정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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