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미술사 속 거장들이 마침내 닿은 경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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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널 페인팅/파트릭 데 링크 지음·장주미 옮김/207쪽·2만8000원·마로니에북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괴로운 일이다. 작년 가을에 나는 마당의 낙엽과 함께 캔버스 6개를 불태웠다. 희망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이다. 그래도 나는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다 표현하기 전에는, 적어도 표현하려고 시도하기 전에는 죽고 싶지 않다.”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가 사망하기 2년 전 쓴 글이다. 노년에 백내장 진단을 받은 모네는 점점 흐려지는 시야를 붙잡으며 집요하게 그림을 그렸다. 그 결과 모네는 삶의 막바지에 걸작으로 칭송받는 정원 시리즈 ‘그랑 데코라시옹’ ‘일본식 다리’ ‘장미’를 완성한다.

특히 모네가 78세부터 86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작업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식 다리’ 연작은 말년에 이르러서야 완성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식 다리는 그의 후기 작품에 여러 번 등장했지만, 말년의 작품에서 각각 다른 조명, 구도, 색채조합을 사용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모네가 사계절뿐만 아니라 하루 동안의 시간, 날씨의 변화까지 작품에 담아낸 것. 모네가 말년에 스스로 고백한 대로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다 표현”하게 된 셈이다.

미술사에 방점을 찍은 위대한 화가들은 죽기 전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지만, 비교적 최근까지 미술계에선 주요 화가들의 말기 작품을 두고 부정적으로 표현하거나 폄하해왔다. 노년의 화가를 재능이 꽃을 피웠던 정점의 시기를 지나 내리막길을 걷는 사람으로 여긴 탓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화가들의 말기 작품에 대한 새로운 연구결과와 평가가 더해진 전시와 간행물이 꾸준히 나왔다. 이 책 역시 그러한 움직임의 일환이다.

라파엘로, 렘브란트, 빈센트 반 고흐, 구스타프 클림트, 앙리 마티스, 프리다 칼로, 파블로 피카소…. 저자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화가 30명의 마지막 생애에 주목한다. 그들의 마지막 창작 활동을 나이와 질환이라는 잣대로 해석하는 게 잘못됐다며 “말기 작품이야말로 작가가 속해 있는 사회로부터 몸부림쳐 얻은 자유로움”이라고 주장한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미술사#파이널 페인팅#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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