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野, ‘그들만의 리그’를 혁파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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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반성 없는 오만에 지방선거 참패
운동권 세력 뛰어넘는 新주류 등장해야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절대로 적을 미워하지 말라. 판단력이 흐려진다.”

영화 ‘대부’에 등장하는 마피아 마이클 콜레오네가 조카에게 후계자 교육을 하면서 한 말이다. 적을 미워하면 현실을 냉철하게 볼 수 없다는 얘기다. 영화 속 대사일지라도 새겨들을 만한 지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영화처럼 돌아가지 않는다. 온갖 인연이 얽힌 복잡계라서 그런 모양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대다수 민의와 동떨어진 강경 지지층의 요구만 ‘복음’처럼 받들었다.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에서도 경고음이 수차례 울렸지만 외면했다. 예민해야 할 정당의 안테나가 작동을 멈춘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퇴임 전 인터뷰에서 “모든 면에서 늘 저쪽(보수 진영)이 항상 더 문제”라고 했다. 민주화 세력이 보수우파 세력보다 월등하게 낫다는 도덕적 우월감이다. 이러다 보니 상대는 악마화하고, 자신들은 신격화하는 선악의 가상세계가 만들어졌다.

지금 야권의 주류 86그룹은 ‘골리앗’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다윗’이 아니다. 국회에선 상당수 중진급 반열에 올랐고, 정·관계에서 상당한 기득권을 누려 왔다. 민주화 세력에 도덕적 명분을 제공해 준 강자 대 약자 구도는 사라졌다. 그런데도 이 사실을 모른 척한다면 민심과 겉돌 수밖에 없다. 그동안 민주당은 이 가상세계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도덕적 우월감 자체를 탓할 순 없다. 생각이 그렇다면 행동도 걸맞아야 할 텐데 오히려 역주행을 했다. 180석 의석을 앞세워 원(院) 구성과 날치기, 입법 폭주를 불사했다. 그동안 여야 합의가 불문율이었던 선거법까지 제1야당을 배제한 채 밀어붙여도 당당하기만 했다. 5년 만에 정권교체가 됐는데도 패인을 따져보고 반성하기는커녕 “졌지만 잘 싸웠다”고 감싸는 데 급급했다. 오히려 검수완박 입법을 군사작전 하듯이 강행했다. 민주화 세력이라면 부끄러워해야 할 반민주적 행태에 당당한 모습이다. 보수 세력을 응징해야 할 대상으로 설정했으니 가능한 장면 아니었을까.

민주당은 이제 내전(內戰) 상태로 돌입한 분위기다. 그동안 ‘원팀’ 구호에 가려졌던 계파 갈등이 전면에 부상했다. 대선 패배의 장본인인 이재명, 송영길의 조기 등판이 대선 불복이라는 역풍을 불러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일말의 반성과 숙고도 없는 오만 그 자체였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5년도 심판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지울 수 없다. 대선 후보는 이재명이었지만 지난 정부의 부동산 대책 실패와 ‘빠’(극단적 팬덤)가 득세한 편 가르기에 국민은 회초리를 들었다. 이번 지방선거 지상파 3사 심층출구조사에 따르면 ‘지난 정권 평가도 고려했다’는 응답이 68.1%나 됐다,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에서도 문재인 정권 심판론이 작동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 전당대회를 겨냥한 친문, 친명 세력 간 전면전은 차기 당 대표의 공천권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편향된 이념에 치우친 당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보려는 몸부림으로 보이진 않는다. 운동권 세력이 주축인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패권 다툼에 가깝다.

야당은 근본적 쇄신을 고민해야 한다.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역전극을 펼친 김동연 모델이 길이 될 수 있다.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김동연이 이길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는 인물 경쟁력이다. 운동권 주류의 민주당 색깔이 옅고, 강경 지지층 중심의 ‘빠’가 아닌 합리적이며 중도적 이미지가 강점으로 작용했다. 쉽지 않겠지만 민주당을 새롭게 이끌어갈 주류가 가야 할 방향 아닌가 싶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그들만의 리그#지방선거#운동권 세력#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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