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배극인]‘선밸리’의 억만장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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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세계 최고 부자 중 한 명인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의 워싱턴포스트 인수가 결정된 자리는 ‘선밸리콘퍼런스’였다. 당시 베이조스 창업자는 이 모임에서 도널드 그레이엄 워싱턴포스트 회장을 만나 3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아마존 플랫폼 강화를 위한 콘텐츠 확보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레이엄 회장은 그 자리에서 2억5000만 달러를 인수가격으로 제시했다. 베이조스 창업자는 별도의 협상 없이 그 자리에서 “사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해마다 7월이면 미국 아이다호주의 휴양지 선밸리에서는 성대한 콘퍼런스가 열린다. 미국 투자회사인 ‘앨런앤드컴퍼니’가 1983년부터 매년 주최하는 행사다. 행사 기간은 일주일. 구글, 애플, 뉴스코퍼레이션, 타임워너 등 글로벌 미디어와 빅테크 거물 300명이 참석한다. 초청장을 받지 않은 인사는 참석할 수 없다. 새로 초청 대상이 되면 미국에선 주요 뉴스로 다뤄질 정도다.

▷코로나19 여파로 2년 만에 열린 작년 행사에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거물들이 집결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을 비롯해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팀 쿡 애플 CEO 등이 참석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행사 참석자들의 자산 총액이 7000억 달러(약 870조 원)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내총생산(GDP)을 웃돈다고 보도했다. 이 모임이 ‘억만장자 사교클럽’으로 불리는 이유다.

▷참석자들은 강연을 함께 듣거나 식사모임 등 사교 활동으로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이 과정에서 최신 흐름을 반영한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인수합병 등 굵직한 비즈니스 거래도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디즈니의 ABC방송국 인수, 버라이즌의 AOL 인수, 컴캐스트의 NBC유니버설 인수 등이 모두 이 모임에서 시작됐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초대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4년 팀 쿡 CEO와 만난 일도 유명하다. 둘이 깊은 대화를 나눈 이후 양 사는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스마트폰 특허 소송을 철회했다.

▷이 부회장은 2002년부터 한 차례를 빼곤 매년 이 행사에 참석했다. 2016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갤럭시S7 언팩행사에 나타난 저커버그와도 이 모임에서 친분을 쌓아 왔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사법 리스크로 2017년 이후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공교롭게 그동안 삼성전자는 미래 먹거리를 위한 이렇다 할 인수합병 실적을 내놓지 못했다.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선밸리의 인적 네트워크는 개별 기업만의 자산은 아닐 것이다. 이 부회장의 올해 참석 가능성에 주목하는 이유다.

배극인 논설위원 bae2150@donga.com
#선밸리#억만장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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