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가 말하는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기’[영감 한 스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28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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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것을
평범하지 않게 보기

안녕하세요. 동아일보 김태언 기자입니다.

며칠 전, “입맛도, 활기도 없다”는 제게 친구가 한 미션(?)을 내려줬습니다.

커피를 마실 때 커피만 마셔보고, 음악을 들을 땐 눈을 감고 음악만 듣고, 샤워할 때는 샤워만 해보라고요.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나면 뻔했던 일상이 조금은 행복해질 거라고요.

시도해보려던 차에 임직순(1919~1996)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됐는데요. 그가 예술을 대했던 태도가 이 미션과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평범한 존재들을 그 자체로 바라보고, 그렇게 관찰하다 그들 안에 있는 평범치 않은 것을 발견해 그림을 그린 화가라 생각됐습니다.

사실 이 기사 준비는 조금 어려웠습니다. 화가로서의 임직순에 대한 연구는 너무나도 적었습니다. 그는 화가보다는 조선대 교수로 14년간 근무(1961~1974년)하면서 후학을 양성했다는 교육자로서의 면모가 많이 부각돼있습니다.

오늘은 화가로서의 임직순이 즐겨 그리던 여인·꽃·풍경, 그중에서도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여인을 중점적으로 살펴봅시다.

가만히 바라보고 그윽이 느끼다

1. 임직순은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줄곧 여인상을 그렸다. 그중에서도 의자에 앉아있는 소녀 좌상은 그에게 수상의 기쁨을 안겨준 애착 가는 소재였다.

2. 임직순이 그린 여성은 시대의 무게를 짊어진 여성상이 아니었다. 해당 여성 본연의 미(美)에 집중한 그림이었다.

3. 여성이 가진 ‘생명력’은 임직순을 매료시켰고, 그는 평범한 여성들을 달리 보이게끔 그려왔다. 이 생명력은 임직순의 과감한 원색 붓 터치로 인해 더 잘 표현됐다.


○가난한 10대 소년, 꿈을 꾸다
꿈을 가진 사람이라도 계기가 있을 때 큰 걸음을 내딛곤 합니다. 임직순도 그랬습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특별히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니었다고 합니다. 꾸준히, 늙어서까지 혼자 할 수 있는 일로 그림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갖고 있었던 거죠.

하지만 임직순의 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그는 1931년 서울로 이주했는데, 살림이 어려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구청에 다니면서 집안 살림을 도왔죠. 그러면서 신문에 실린 그림, 사진을 따라 그리곤 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임직순에게 계기가 나타납니다. 진명여학교에 다니는 친구의 여동생을 만난 겁니다.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김과 동시에 열패감이 느껴졌습니다. 가난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좌절했던 거죠. 임직순은 그 소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일본에 가 미술 공부를 하고 오겠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 소녀의 영향이었던 걸까요? 10대 후반의 가난한 소년에게 불쏘시개가 되었던 ‘소녀’라는 존재는 일관된 소재로 등장합니다. 가장 크게 주목받았던 것은 1957년, 제6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문교부가 창설한 전람회)이었습니다. 출품작 ‘좌상’은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았고, 이 그림은 당대 여러 화가에게 큰 영향을 줍니다.

임직순, 좌상, 1957
임직순, 좌상, 1957


제4회까지만 해도 국전 출품작은 풍경화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제5회에 접어들면서 인물을 주제로 한 그림이 많아졌는데요. 이때 임직순의 ‘좌상’이 대통령상을 받으면서 큰 흐름에 불을 지폈던 겁니다. ‘좌상’의 구도는 굉장히 안정적인데요. 이러한 인물 좌상의 경향은 1960년대 초까지 지속됐습니다.
○여성의 얼굴에서 이야기를 보다
하지만 이 여인 좌상은 임직순에게 단순히 수상을 위한 일시적인 전략은 아니었습니다. 임직순은 1950~1980년대까지 한결같이 인물상을 그렸습니다. 인천여고, 서울여자상업고, 숙명여고 등에서 미술 교사로 일하면서 실제 여학생들을 모델 삼아 그들의 모습을 재현하곤 했죠.

임직순, 여인 좌상, 1956,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임직순, 여인 좌상, 1956,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임직순이 모델인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입니다. 일제강점기 인물화에 등장하는 소녀들은 주로 동생을 업거나 돌보는 모습으로 그려졌습니다. 어머니를 대신하는 이미지로 그려졌던 거죠. 하지만 임직순은 달랐습니다. 임직순 그림 속 소녀는 그 본연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임직순은 순수하게 여성 그 자체를 바라본 듯합니다. 자신의 모델로 선 상대방을 오롯이 주인공으로 만들어준 거지요.

“나는 여자의 얼굴을 그리며 그 사람을 본다. (중략) 소녀는 소녀대로, 처녀는 처녀대로, 중년은 중년대로의 이야기를 나는 얼굴에서 듣는다. 그 이야기들은 때로는 수줍고 아름다운 이야기일 수도, 때로는 발랄하고 꿈꾸는 듯한 이야기일 수도, 때로는 진지하고 고뇌에 찬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말이 아닌 얼굴에서 듣는 이야기가 나에게 꿈을 안겨다 주고 나로 하여금 여자를 그리게 한다.” -임직순 화문집 ‘꽃과 태양의 마을’ 중


비슷한 구도, 평면에 가까운 그림이지만 자세히 보면 여성들의 얼굴은 확연히 구분됩니다. “각자가 지내온 삶이 다른 것처럼 여성들의 표정도 각기 다르다”는 임직순의 생각이 반영됐기 때문이겠지요. 임직순이 여성에게 주어진 어떠한 역할에 집중하지 않고, 그대로의 모습을 보려 노력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임직순, 해바라기와 소녀, 1959,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임직순, 해바라기와 소녀, 1959,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임직순, 포즈, 1974,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임직순, 포즈, 1974,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색으로 표현한 여성의 생명력
많은 여성 중에서도 임직순이 특히 욕심을 냈던 여성이 있긴 했습니다. 그는 화문집에서 “내 그림 속의 여자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남을 즐겁게 하는 신비한 마력을 지닌 여자여야 한다. 내가 여자에 끌리는 것은 외모의 아름다움에 가린 보이지 않는 생명의 힘에 끌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임직순, 꽃과 여인, 1974,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임직순, 꽃과 여인, 1974, 광주시립미술관 제공


이 ‘생명력’을 잘 표현해주는 수단은 바로 색이었습니다. 임직순은 빛과 색채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곤 했습니다. “눈먼 채로 태어나서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떴으면 한다”는 프랑스 화가 피에르 보나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까지요. 이렇게 애정하는 색을 가지고 그리고 싶었던 것은 “건강한 생”과 “자연”이었습니다.

임직순은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지만 저는 색의 바탕에 있는, 보통의 대상에 대한 애정이 그의 색을 더 빛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성정이기에 임직순의 모습도 그리 비치나 봅니다. 이경성 미술평론가는 임직순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임직순


“화가에게는 두 가지 타입이 있다. 하나는 화려한 표정을 지니고 미술사의 표면을 표류하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미술사 속에 끼어서 평범하게 자라가고 날이 갈수록 보석같이 빛나는 사람이다. 그렇게 볼 때 화가 임직순은 확실히 후자에 속한다. 서둘지 않고 뻐기지 않고 꾸준히 황소같이 걸어가는 그의 모습에는 희망한 내일의 영광이 보인다.”


임직순은 분명 평범한 인물들에게서 평범하지 않은 점을 발견해왔던 인물인 것 같습니다. 숨은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안목과 뒷받침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테지요. 그래서일까요? 임직순이 한정적인 소재로 그림을 그렸던 것에 대해 아쉽다는 평도 많지만, 저는 이제 그림마다 다른 이야기를 찾고 싶어집니다. 저도 오늘은 놓치고 있던 제 주변 사물들을 향해, 사람들을 향해 꾸밈없는 관심을 기울여보려 합니다.


전시 정보

광주미술아카이브전 (색채의 마술사 임직순)
2022.04.19~2022.06.26
광주시립미술관(광주광역시 북구 하서로 52)
회화 75점, 드로잉 60점, 아카이브 자료 70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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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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