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토리는 좀 뻔하다. 어느 날 서울의 직장에서 새벽 두 시에 퇴근해 귀가한 프랑스인 엔지니어 남편이 “이대로 살다간 죽을 것 같다”면서 별안간 농부가 되고 싶다고 선언한다. 나이 마흔에…. 늦깎이 농사 공부를 시작하고 없는 돈에 땅을 보러 다니며 잘 안 될 거라는 주변의 조언을 듣고 좌충우돌한다. 한 땀 한 땀 땅을 일구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부부는 작은 행복을 발견해 간다.
배경음악과 풍경만으로도 80%는 먹고 들어가는 여느 와인 소재 영화 같다. 단, 이것은 영상물이 아니며 활자 예술이다. 따라서 생생한 묘사와 정감 어린 통찰이 어우러진 저자의 글맛이 중요한데 소설가인 지은이는 뛰어난 관찰력, 기억력, 필력을 동원해 그 어려운 것을 해내고 만다. 그렇다고 붓의 힘이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필체는 아기 고양이의 아장거리는 리듬처럼 사랑스럽다. 넘치지 않게 절제돼 앙증맞은 삽화도 제 몫을 다한다.
농부 남편 레돔의 다음과 같은 말이, 잔에 담긴 술처럼 여운이 돼 찰랑인다.
“세상에 맛없는 내추럴 와인은 없어. 한 잔의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그 과일이 자란 땅과 나무, 바람과 햇빛을 느끼고 즐긴다는 것이야. …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은 향이나 맛을 첨가하지 않은 술이라면 그 자체로 괜찮은 거라고 생각해.”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