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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정년연장-업무완화 없는 ‘인건비 절감용 임피’ 제동

입력 2022-05-27 03:00업데이트 2022-05-27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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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완조치 없는 임금피크제는 위법”…대법, 가이드라인 제시
①정당한 목적 ②적정 감액 ③업무강도 완화 ④감액 재원 적절 사용
업무 강도 완화, 정년 연장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임금피크제는 위법이라는 대법원 첫 판단이 나왔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보장하거나 연장하는 대신 일정 연령이 되면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다. 정년제를 운영하는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체의 절반가량이 도입하고 있어 향후 줄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6일 A 씨가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을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연구원은 2009년 1월 만 55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고, 1991년 입사한 A 씨는 2011년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받은 뒤 2014년 퇴직했다.

A 씨는 퇴직 후 연구원이 연령을 이유로 임금 차별을 금지한 고령자고용촉진법을 위반했다며 퇴직 때까지의 임금 차액(약 1억8300만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회사 측은 노사 합의로 취업규칙을 변경해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고 맞섰다.

1심은 “노사 합의를 거쳤어도 법령에 어긋나는 취업규칙이라면 효력이 없다”며 A 씨에게 약 1억4600만 원과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2심도 약 1억37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이날 대법원은 합법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기 위해 필요한 4가지 요건도 제시했다.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정당성 △임금 감액의 적정성 △적절한 임금 감소 보완 조치(정년 연장이나 업무 강도 완화 등) 여부 △감액 재원이 도입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등이다. 경영상 위기가 있거나, 정년 연장 또는 업무 강도 완화 등의 조치와 함께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것은 유효하다는 뜻이다.

이날 대법원 판결에 대해 노동계는 일제히 환영한 반면 재계는 “청년 일자리 감소와 중장년 고용 불안 등 부작용이 심각해질 것”(대한상공회의소)이라고 우려했다.


대법 “적절한 보완조치 없는 임금피크제는 무효”… 판결 의미와 파장 Q&A



대법원이 26일 업무강도 완화, 정년 연장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또 임금피크제가 법적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한 네 가지 요건을 제시했다. 이번 판결의 의미와 파장을 질의응답 형식으로 풀어봤다.

Q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은 임금피크제를 어떻게 도입했나.

A 연구원은 2009년 기존 정년인 61세를 유지하면서 55세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인건비 부담을 완화하고 근로자들의 실적 달성률을 높인다는 목적이었다.

Q 대법원은 연구원의 임금피크제가 왜 고령자고용촉진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나.

A 연구원의 경우 재판 과정에서 51∼54세 미만 정규직 직원의 실적 달성률이 55세 이상 정규직 직원에 비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법원은 “(그럼에도) 경영혁신과 경영효율을 목적으로 55세 이상 직원만을 대상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임금 삭감 조치를 내린 것은 정당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연구원은 특히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55세 이상 근로자의 업무를 바꾸거나 업무량을 줄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년도 늘려주지 않았다. 연구원을 상대로 이번 소송(임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 A 씨의 경우 2011년부터 임금피크제가 적용되면서 같은 해 월급이 최저 93만 원에서 최고 283만 원 감소하게 됐다.

대법원은 이런 사실관계를 종합해 연구원의 임금피크제 도입에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A 씨의 임금이 깎였는데도 부여된 목표 수준이나 업무 내용에 차이가 없는 등 보상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Q 중소기업 B사는 정년을 만 60세에서 만 62세로 늘리면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이 역시 위법인가.

A 대법원이 이번에 내린 판결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 관한 것이다.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정 연령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 효력을 처음으로 판단했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선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의 경우 법원에서 효력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런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는 기업은 근로자로부터 임금 청구 소송을 당하더라도 승소하는 사례가 많이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Q 그렇다면 이번 판결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만 적용되나.

A 대법원은 이날 임금피크제의 합법성을 인정하기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요건을 제시하면서, 정년유지형과 정년연장형에 모두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금피크제 도입의 정당성과 필요성 △임금 감액의 적정성 △임금 감소 보완 조치의 적정성 △감액 재원의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 달성 여부 등이다. 대법원은 “(이 같은) 기준에 따라 개별 사안별로 달리 판단될 것”이라고 밝혔다.

Q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의 파장을 어떻게 보고 있나.

A 전문가들은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인 기업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단순히 인건비 절감만을 목적으로 한 임금피크제에 대한 소송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이미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업들이 노사협의로 제도를 재설계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은 “(공공기관과 기업이) 송사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임금피크제 적용 기간, 임금 삭감폭, 제도 도입 후의 직무 수행 변화, 근로시간 단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도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분간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이 첫 판례인 데다 참고할 정부의 가이드라인도 없기 때문이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임금피크제가 실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대법 판결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면서 “단순히 임금피크제의 형식만 빌려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곳에 대한 법적 평가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Q 소송하면 깎였던 임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나.

A 이번 소송의 경우 당사자인 A 씨가 2014년 9월 퇴직과 동시에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근로기준법상 임금채권 소멸시효가 3년이라는 점을 들어 2011년 10월부터 퇴직할 때까지 임금피크제로 깎인 급여와 퇴직금 약 1억37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임금피크제는 2011년 4월부터 적용됐는데 2011년 4∼9월의 임금은 받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소송을 제기해 법원이 회사의 임금피크제가 무효라고 판단할 경우 3년 이전부터 삭감된 임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다만 불법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 시효가 10년이라는 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법원이 무효인 임금피크제를 적용한 것을 ‘불법 행위’로 판단한다면 불법 행위를 안 날로부터 3년, 몰랐다면 10년 안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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