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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이기홍 칼럼]문재인 정권이 한미동맹 강화시켰다는 궤변

입력 2022-05-27 03:00업데이트 2022-05-2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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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바이든 한미동맹 복원’ 평가에
野 “작년 5·21 문-바이든 성명 복사판”
5·21 제대로 실행 안돼 美 내 불신 가중
공공외교도 종전선언 지지확보 도구로 변질
이기홍 대기자
윤석열-조 바이든 정상회담 결과 한미동맹이 복원됐다는 평가가 잇따르자 더불어민주당은 한미동맹은 이미 문재인 정권에서 강화됐다고 반박했다.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지난해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정치·군사를 넘어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격상시켰다”고 주장했다.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문 정부가 확장시킨 한미동맹을 계승·발전하고자 한 것으로 보여 다행”이라고 했다.

지난해 5월 21일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나온 5·21 공동성명을 근거로 한 주장들이다. 얼핏 보면 맞는 말이다.

당시 공동성명은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차원을 넘어선 대중 굴종외교, 한미동맹의 대북억지력 축소 일변도를 걸었던 문 정권의 대전환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후다. 문 정권은 슬금슬금 제자리로 돌아갔다. 미중 갈등, 한미 연합훈련 문제 등에 열의를 보이지 않고 기존 스탠스를 유지했다.

문 정부 임기 말 전직 고위외교관이 바이든 행정부 최고위급 관계자에게 “5·21 공동성명이 잘 이행되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피식 웃으며 “알면서 왜 물어보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당시 문 대통령은 판문점선언, 싱가포르선언 등 자신의 어젠다를 새로 출범한 바이든 정부에서도 반영하는 데 골몰했다. 이를 위해 ‘대만해협의 평화 안정’등 미국이 원한 민감한 문구를 받아준 것이다.

필자가 5·21 공동성명 직후 쓴 칼럼의 제목은 ‘등떠밀려 진입한 옳은 길, 실천이 관건’이었다. 우려대로 문재인 정권은 북한과의 대화 재개 문제 이외에는 큰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애당초 그럴 의지가 없었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할 것이다.

물론 문재인 정부 5년을 포함해 지난 수십년간 한미동맹이 외형상 무너진 적은 없다.

그러나 유사시 남의 전쟁터에 자국 젊은이를 보내야 하는 안보동맹은 협정의 존재만으로 지속가능성을 갖는 게 아니다. 정상회담에서 미사여구가 난무해도 행정부와 의회를 비롯한 조야에서 불신이 깊어지면 동맹은 위기로 치닫는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는 “만약 지난 몇 년 식으로 몇 년 더 갔으면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사실 문재인 정부가 대미외교에 돈을 쓰지 않은 것은 아니다.

주미 대사관엔 공공외교 공사라는 고위직이 신설됐다. 그런데 ‘외국 국민들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우리나라의 역사 문화 등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켜 국가이미지와 브랜드를 높이는 외교활동’(외교부 홈페이지)이어야 할 공공외교가 종전선언 등 정권 어젠다의 지지를 확보하는 작업으로 변질됐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민주평통 미주부의장에 문 대통령 대학 후배가 임명된 것을 비롯해 주요 도시 간부직이 친민주당 인사들로 채워졌고, 종전선언 지지 강연회, 모임 등이 잇따랐다. 미 의회가 종전선언 지지 결의안을 통과시키게 만들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는 미국이 2016년 러시아 스캔들 이후 대폭 강화한 일명 FARA법, 즉 외국대리인등록법(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에 저촉될 소지가 있는 위험한 접근이다.

교민들이 미 의원 등을 상대로 유권자 운동을 펼치는 것은 좋지만, 이는 교민 위상강화나 보편적 인권문제 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출신국 정부의 어젠다를 위한 활동에 그 정부의 돈이 들어가면 스파이 행위로 간주돼 엄중 처벌받을 수 있다.

종전선언 등을 위해 동원된 문 정권의 대미 민간외교는 뉴욕뉴저지한인유권자센터 등이 주도한 유권자 운동의 결과 2007년 미 의회가 일본군 위안부 사과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성과를 내는 등 미국 내에서 한발 한발 성장해온 풀뿌리 운동에 찬물을 끼얹었다.

다행히 이제 동맹 관리는 본궤도로 복원됐다.

이번 윤-바이든 공동성명은 5·21의 업그레이드판 수준이지만 실제 효과는 본질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우선 미국의 기대가 다르다. 문 정부에 대해선 임기 말이니까 대충 넘어갔지만 이젠 정말 한국이 열의를 갖고 임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5·21 때는 겉으론 신경질을 내면서도 내심으론 한국이 안 변할 것이라고 예상하며 넘어갔지만 이번엔 매우 심각하게 볼 것이다.

이 점에서 윤 정부가 경계해야 할 대목들이 있다. 방향은 맞는데 속도와 강도에 대한 전략적 마인드도 충분히 갖춘 것인지 확실치 않다.

동맹 복원이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수준이 돼선 안 된다. 정반합(正反合)으로 진전해야 한다. 너무 고무되거나 균형을 잃어선 안 된다.

사소한 사례지만 19일 밤 그랜드하얏트호텔 앞 폭행사건을 일으킨 미 경호원을 20일 오후 4시 출국시킨 것은 정상적인 업무 처리와는 다르다. 이 경호원은 SOFA 대상도 아니고 외교관도 아니다. 경찰은 본보 질의에 조사가 끝나 송치할 계획이며 폭행의 정도로 보아 약식 기소 후 벌금형이 나오면 해외납부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물론 경미한 폭행에 대해 신병을 장기간 확보할 수는 없으며 출국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폭행 만 하루도 안돼 출국시킨 결정에는 다른 요인이 고려됐을 가능성이 의심된다.

중국에 대해서도 확실한 원칙을 가져야 한다. 중국이 약하게 반응한다 해서 쉽게 말하고, 세게 나온다 해서 움츠리는, 그때그때 대응은 안 된다.

5년간 익숙할 만큼 경험한 문 정권과 민주당의 속성은 아쉬운 게 있을 때는 약속·공약을 서슴없이 하지만 그 필요성이 사라지면 헌신짝같이 뒤집거나 무시해 버린다는 점이다. 내정뿐만 아니라 외교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윤 정부는 올바른 방향으로 대선회했다. 하지만 향후 어떤 도전이 닥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예컨대 만약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중국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최고조의 위기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냉정하고 치밀한 전략을 바탕으로 동맹 강화의 길을 정교하게 걸어야 한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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