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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가상현실’과 ‘메타북스’가 빚어낸 우연한 이야기

입력 2022-05-26 03:00업데이트 2022-05-26 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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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 ‘…스크롤!’ 소설가 정지돈
서사구조 벗어난 독특한 형식-내용
“내 안에서 연결된 여러 소재 녹여”
어떤 독자층을 염두에 두고 집필하느냐는 질문에 정지돈은 “내가 상정하는 독자층은 나다. 내가 재밌어야 소설을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이번 책이 진짜 어렵긴 한가 봐요.”

24일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소설가 정지돈(39)은 “온라인에 책 리뷰 올라오는 속도가 전작들에 비해 확연히 느리다”며 웃었다. 그가 9일 펴낸 공상과학(SF) 소설 ‘…스크롤!’(민음사)은 기승전결의 일반적 서사구조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신간은 가상현실에서 활동하며 음모론을 척결하는 ‘미신 파괴자’들과, 가까운 미래의 서점 ‘메타북스’ 직원들의 두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에서는 파편적인 이야기들이 우연히 전개된다. 가상현실과 메타북스 두 이야기 사이의 연관성도 작품에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실험적 문학기법으로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작가답게 독특한 형식과 내용을 담았다. 그는 “소설 속 강력한 인과성은 예술이란 장르 때문에 발생하는 ‘가짜 현실’이다. 현실은 우연적으로 흘러간다. 현실에서 사물과 사람을 체험하는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신작은 음모론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 근미래 배경의 수사물을 쓰려고 자료조사를 하던 중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둘러싼 음모론에 대응하는 ‘미스버스터스(mythbusters) 팀을 만든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음모론을 파다 보니 사이키델릭 약물, 메타버스, 인공지능 등 다양한 소재들이 엮여 있었다. 내 안에서 연결된 여러 소재를 작품에 녹였다”고 말했다.

책에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가 우주의 근원이라고 주장한 ‘아페이론’ 같은 생소한 개념들이 튀어나온다. 환각제인 LSD나 실로시빈이 병을 치료하고 창의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른바 ‘사이키델릭 르네상스’도 집필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대학 시절 세계문학전집이 꽂힌 도서관 서가를 따라 걸으며 처음 본 작가의 소설을 전부 읽을 정도로 독서광이었다. 지금도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를 검색하고 이 중 꽂히는 소재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소설에 녹인다”고 했다.

신작은 난해하고 불친절하다. 하지만 그는 예술가마다 독창적인 탐구 방식이 있고 이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늦은 밤 혼자 침대에 누워 있어도 책 하나만 있으면 돼요. 책은 저에게 가장 좋은 피난처이자 동료거든요. 저도 그런 책을 쓰고 싶어요. 누군가는 제 책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고요. 사회에서 동떨어진, 외로운 작업을 꾸준히 해나가는 제 모습을 통해 용기와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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