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모드공유하기
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정원수]법무부 ‘차이니스 월’

입력 2022-05-26 03:00업데이트 2022-05-26 11:57
글자크기 설정 레이어 열기 뉴스듣기 프린트
글자크기 설정 닫기
“법무부 내에 분명한 ‘차이니스 월(Chinese Wall)’을 쳐서 인사검증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는 일이 결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 법무부는 25일 공직자 검증 업무를 담당할 인사정보관리단의 운영 방향에 대해 이같이 강조했다. 장관은 결과만 보고받고, 장관을 포함한 법무부의 누구도 검증 과정의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게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검증 정보를 수사 첩보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차이니스 월은 원래 금융권 용어다. 중국 만리장성이 유목 지역과 농경 지역을 갈라놓듯 금융회사의 부서 간 또는 계열사 간 미공개 정보의 교류를 차단하는 것을 뜻한다. 1960년대 후반 미국 메릴린치에서 처음 도입했고, 1980년대에 내부자 거래를 통한 금융스캔들을 막기 위한 법률로 격상됐다. 미국 금융 기법에 대한 수사 경험이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금융권 용어로 비판 여론에 ‘방어 장벽’을 친 셈이다.

▷법률상 모든 공직 후보자의 정보 관리는 인사혁신처장의 권한이다. 대통령 임명직에 한해 인사혁신처장은 대통령비서실장에게 검증 업무를 위탁한다. 옛 민정수석실이 검증을 했던 근거다. 법무부 장관도 검증 업무를 위탁받게 대통령령을 고치면 된다는 것이 법무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비서실장과 달리 법무부 장관은 정부조직법상 검증 권한이 없다. 민정수석실 검증을 국정 협조 차원에서 법무부, 경찰이 도왔던 것도 위법 시비가 있었다. 법무부 지침만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직자는 1만여 명으로 알려져 있다. 검증 대상은 주로 공무원이지만 민간인도 포함된다. 통상 3∼5배수 검증을 하면 최대 5만 명의 개인정보가 수집된다. 부동산과 납세, 금융, 수사 자료에 국가정보원의 존안(存案), 경찰의 세평(世評) 파일까지 추가된다. 법무부 검증은 감사원의 감사 대상이어서 음지의 업무를 양지로 끌어낸 것이라고 법무부는 주장한다. 하지만 운영 과정에서 민간인 사찰 논란과 같은 불행한 일이 재발할 위험이 있다.

▷법무부가 행정부 내 검증의 유일한 축이 되면 교차 검증이 불가능해진다. 국회에서 ‘인사검증법’ 제정 논의가 있었을 때도 정부 부처 한 곳이 일괄적으로 검증 자료를 수집, 정리, 분석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반대 의견이 많았다. 여러 부처의 공무원을 파견 받는 종합 업무의 성격이 강하고, 기밀 유지를 위해 사무실도 제3의 장소에 둔다는데 굳이 국무총리가 아닌 법무부 장관 직속이어야 하나. 검찰 출신인 ‘인사비서관→법무부 장관→공직기강비서관’으로 이어지는 검증을 위한 제도 개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정원수 논설위원 needjung@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댓글 0
닫기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베스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