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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광화문에서/박선희]논란만 키운 일회용컵 보증금제…실효성 있는 환경 정책 나와야

입력 2022-05-25 03:00업데이트 2022-05-2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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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산업2부 차장
캐나다 토론토의 한 슈퍼에 슬링(신생아용 아기띠)을 찬 젊은 엄마가 들어온다. 가게 주인 김모 씨가 딸인지 아들인지 묻자 손님이 말한다. “아기가 ‘그 혹은 그녀’인지 섣불리 단정하고 싶진 않아요.” 친환경적 배변 방법을 실천 중이라 기저귀조차 쓰지 않는다고도 똑 부러지게 말한다. 하지만 그 순간, 아기가 싼 오줌이 바닥을 적신다. 김 씨가 말한다. “걱정 마세요. 저희는 ‘성 중립적인(gender-neutral) 타월’도 저렴하게 팔고 있답니다.”

인기 캐나다 드라마 ‘김 씨네 편의점(Kim‘s convenience)’은 이국땅에서 풀뿌리처럼 꿋꿋이 살아남은 한국 이민자들의 삶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다. 캐나다 엄마에게서 받은 문화충격을 ‘젠더 뉴트럴 마케팅’으로 바로 승화시키는 김 씨의 생존력 역시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던 건 젠더 이슈나 친환경주의를 유머의 소재로 활용했단 점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리 코미디라도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기제가 강하게 작동하는 영역에서 풍자의 소재를 택한 점이 놀라웠다.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보면 최근의 한국 사회가 이념적·정치적으로 훨씬 더 경직돼 있구나 싶었다.

특히 지난 몇 년간 환경은 젠더만큼 언급하기 어려운 이슈가 됐다. 코로나19를 거치며 환경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고, 지속가능한 환경은 정치적 어젠다로 부상했다. 하지만 성별·인종 등에서 차별의 표현을 지양하자는 ‘정치적 올바름’이 기계적으로 작동하다 보면 무엇이 차별이고 무엇이 강박인지 판별하기 애매해진다. 그 경계가 모호해질수록 표현의 자유나 건설적 논의에 제약이 생긴다.

지금까진 국내 환경 이슈가 비슷한 전철을 밟아 왔다. 환경 정책에 대한 ‘다른 의견’은 맥락을 떠나 이기주의나 반환경주의란 사회적 낙인에서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지난 정권 동안 현장의 다양한 혼란이 예견됐던 정책을 친환경이란 대의만으로 계속 밀어붙일 수 있던 것도 이런 사회적 기류와 무관치 않았을 것이다.

현실과 괴리된 일률적 환경 정책은 다양한 촌극을 낳았다. 자율포장대에 종이박스는 있건만 테이프는 사라졌다. 포장 진열된 샐러드를 매장 내에서 먹으려고 다시 접시에 옮겨 담아야 했고, 휘발유 냄새 나는 종이빨대에 적응해야 했다. 편의점에서는 컵라면인지 어묵인지에 따라 나무젓가락 제공 여부가 달라져 소동이 일었다. 결국 소상공인과 소비자 피해가 뻔히 예상됐던 종이컵 보증제까지 밀어붙여 사달이 났다.

종이컵 보증제는 새 집권 여당이 문제 삼으며 일단 유예됐지만, 끝까지 떨치기 어려운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눅눅해진 컵에 바코드를 붙이고 강제로 수거시키는 것보다 더 나은 수준의 환경 정책은 정말로 불가능한 것일까? 친환경이란 명분을 언제까지고 아마추어적 정책의 면피로 삼을 순 없다. 이제는 당위성에 매몰된 환경 정책보단 충분한 숙의를 거친 제대로 된 정책을 보고 싶다.

박선희 산업2부 차장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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