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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오피니언

[횡설수설/배극인]EPL 득점왕 손흥민

입력 2022-05-24 03:00업데이트 2022-05-24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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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계관을 쓴 살아있는 축구 전설을 보면 아시아인은 자부심을 느낀다.” 중국 인터넷 매체 왕이는 23일 손흥민의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 확정을 자국 경사처럼 전했다. 일본 포털사이트도 관련 소식을 메인 뉴스로 전했다. 손흥민의 대기록이 아시아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EPL은 유럽 5대 리그 중에서도 최정상이다.

▷이번 시즌 손흥민은 말 그대로 기록 제조기였다. 필드골로만 23골을 넣으며 차범근 전 감독이 1985∼1986시즌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세웠던 한국 선수 유럽 축구리그 시즌 최다 골(17골) 기록을 넘어섰다. 종전 아시아인 유럽 1부 리그 최다골(21골) 기록도 경신했다. 손흥민이 고교 1년을 중퇴하고 유럽으로 간 지 14년 만이다. 경기장 안에선 ‘축구 못하는 동네에서 온 녀석’이란 편견에 패스도 안 하던 동료들을 실력으로 돌려세웠고, 경기장 밖에선 문화 차이와 언어 장벽을 극복해낸 피땀의 결실이었다.

▷손흥민이 득점왕에 이른 과정도 개인주의가 강한 유럽 축구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경기 때마다 개인 기록보다 팀 성적을 우선시했다. 시즌 막판 숨 막히는 득점왕 경쟁을 하면서도 팀 승리를 위해 PK 찬스를 흔쾌히 양보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선 언제나 공(功)을 동료들에게 돌렸다. 손흥민이 앞장서 EPL에서 보기 힘든 팀 문화를 만들었고, 23일 최종 경기에서 동료들은 한마음으로 득점을 돕고 나섰다.

▷손흥민의 뒤에는 늘 아버지 손웅정 씨가 있었다. 어린 자식에게 7년 동안 기본기만 단련시켰고, 양발을 자유자재로 쓰도록 하루에 1000개의 슈팅을 시켰다. 자신은 기술이 부족한 삼류 선수였다며 “나처럼 축구하면 안 되겠다 싶어 아들에겐 정반대로 가르쳤다”고 했다. 어린 아들이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할 때마다 “성공은 선불”이라고 다독였다. 아들이 2010년 유럽무대 첫 골을 넣자, 인터넷을 보고 자만할까봐 노트북을 치워 버렸다. 최근까지도 그는 “아들은 절대 월드클래스가 아니다”라며 몸을 낮춘다.

▷과거 한국 축구 전설은 차범근과 박지성이었다. 누가 최고냐는 논쟁에 차 전 감독은 작년 한 방송에서 “지금 손흥민이 이루고 있는 업적은 우리 둘이 못 따라간다”며 자신을 꼴찌로 꼽았다. 물론 후배들은 선배를 앞세웠다. 마지막 경기에서 승점 1점 차이로 EPL 우승컵을 놓친 위르겐 클로프 리버풀 감독은 아쉬워하면서도 “2위는 내 인생 이야기다”라며 결과를 받아들였다. 실력과 겸손함을 갖춘 월드 스타들의 진면목이다. 인생살이 덕목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배극인 논설위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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