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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제주불교 개척 봉려관 스님, 어느 그릇에도 담아낼 물같은 존재”

입력 2022-05-23 03:00업데이트 2022-05-23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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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장 혜달 스님
관음사 등 10여개 사찰 창건-중창
수행자이자 독립-여성운동가의 삶
“8월 불교방송서 다큐멘터리 방영”
19일 제주 제주시 서연길 관음정사에서 만난 혜달 스님(왼쪽 사진)과 생전의 봉려관 스님. 혜달 스님은 봉려관 스님의 유지를 기리는 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제주=김갑식 문화전문기자·혜달 스님 제공
제주 불교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비구니로 근대 제주불교의 개척자이자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에 나선 안봉려관(安蓬廬觀·1865∼1938) 스님이다. 1907년 전남 해남 대흥사에서 유장 스님을 은사로, 청봉 스님을 계사로 출가했다. 1909년 제주 관음사를 창건한 데 이어 법화사, 불탑사, 법정사, 월성사, 백련사를 중창하거나 창건했다. 1918년 ‘법정사 항일운동’에서도 활동가를 양성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핵심 역할을 했다. 봉려관 스님의 유지를 기리는 봉려관불교문화연구원장 혜달 스님(59)을 19일 제주 관음정사에서 만났다. 혜달 스님은 경기 수원시 봉녕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대만국립사범대에서 석·박사를 취득했다.

―봉려관 스님 이전에 제주 불교의 모습은 어떠했나.

“알려진 대로 제주도는 바다와 접하고 한라산이 있어 토속신앙의 영향력이 강했다. 나무로 된 불상은 태우고 철 불상은 바다에 빠뜨렸다고 한다. 육지의 스님들이 왕래하고 신자들은 존재했지만 종교로서의 불교는 유명무실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비구니 스님이 사찰을 창건하는 데 어려움이 컸을 것 같다.

“스님이 나오면 집안이 망한다는 분위기였다. 봉려관 스님도 포교를 위해 여러 곳에 움막을 지었지만 불이 나서 한라산으로 몸을 숨겨야 했다. 그런 어려움에도 수행처와 포교 요충지에 여러 사찰을 세웠다.”

―봉려관 스님은 어떤 과정을 통해 항일운동에 나섰나.

“1909년 의병들의 참사를 목격한 뒤 항일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1911년 법정사를 창건하는데 그곳은 일반인이 출입하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이자 훈련 장소였다. 그곳에 항일 의지가 있는 이들을 보내고 거사에 활동자금을 지원했다는 증언이 있다.”

―같은 여성이자 비구니로서 봉려관 스님의 삶을 어떻게 보나.


“수행자이자 독립운동가, 여성운동가…. 그분의 삶은 어느 그릇에도 담아낼 수 있는 물과 같은 것이었다.”

―현재 조계종 출가자 중 절반 이상이 비구니다. 하지만 불교사에서 여성 수행자의 삶은 거의 조명되지 않고 있다.

“묘엄 스님(1931∼2011)은 생전 비구니들이 배우고 노력한 만큼 거두지 못한다며 자주 아쉬워했다.”

―묘엄 스님은 청담 스님의 딸로 현대 한국불교 최초의 비구니 강사다. 어떤 인연이 있나.

“묘엄 스님이 제가 공부할 때 많은 도움을 주셨다. 이를 제대로 갚지 못해 항상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다. 근대 제주 불교사를 제대로 정리하는 게 빚을 갚는 길인 것 같다.”

―봉려관 스님과 관련해 향후 어떤 계획이 있나.

“그분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는 학술 세미나가 올해 3회째 개최됐고, 8월 불교방송 BTN에서 다큐멘터리가 방영된다. 봉려관 스님의 삶은 왜곡하거나 과장할 필요가 없다. 팩트만 그대로 전해도 제주뿐 아니라 우리나라 곳곳에 알려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제주=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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