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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스포츠

350SV ‘돌부처’ 오승환, 알고 보면 2000년 황금사자기 결승 홈런 타자 출신

입력 2022-05-20 13:41업데이트 2022-05-2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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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통산 350세이브 기록을 남긴 뒤 동료들과 인사하는 오승환. 삼성 제공
‘끝판대장’ 오승환(40·삼성)이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통산 350세이브 고지에 올랐다.

오승환은 19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팀이 2-1로 앞선 연장 10회말 등판해 안방 팀 한화 타선을 2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막고 시즌 11번째이자 KBO리그 통산 350번째 세이브를 챙겼다.

2005년 단국대를 졸업하고 삼성에 입단한 오승환은 그해 4월 27일 대구에서 LG를 상대로 개인 첫 세이브를 따냈다.

그래도 데뷔 시즌 초반에는 마무리 투수 권오준(42·은퇴) 앞에 등판하는 ‘셋업맨’이 그의 자리였다.

그는 늘 무표정한 얼굴로 마운드에 올라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위기를 지우고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그래서 이재국 당시 스포츠서울 기자가 붙여준 별명이 바로 ‘돌부처’였다.

돌부처가 위기를 지우면 ‘저승사자’ 권오준이 마운드에 올라 경기를 마무리했다.

한 누리꾼이 오승환 특유의 무표정을 살려 만든 이미지. 인터넷 캡처
권오준과 오승환이 철벽 방어를 이어가자 언론에서는 두 선수 성(姓)에서 따와 ‘OK 펀치’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그러나 선동열 당시 삼성 감독은 이 별명을 ‘KO 펀치’로 바꾸기로 마음 먹는다.

두 선수 자리를 바꿔 권오준을 셋업맨으로 오승환을 마무리 투수로 쓰기로 보직을 바꾼 것이다.

선 감독은 당시 농담 삼아 “OK 펀치보다 KO 펀치가 세기 때문”이라고 보직 변경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마무리를 맡은 뒤 14세이브를 기록한 오승환은 결국 16세이브(10승 1패 16홀드)로 시즌을 마감했다.

신인상도 당연히 오승환의 차지였다. 대졸 선수로 데뷔 첫 해 신인상을 탄 건 여전히 오승환이 마지막이다.

이후로는 문자 그대로 승승장구였다.

2007년 9월 18일 광주에서 KIA를 상대로 통산 100세이브를 기록했고 2012년 7월 1일에는 대구에서 넥센을 상대로 개인 통산 228세이브를 거두면서 역대 세이브 1위로 올라섰다.

한국 프로야구를 평정하고 일본 프로야구 한신으로 건너 간 오승환. 한신 제공
통산 277세이브를 남긴 채 2014년 일본 프로야구 한신에 입단한 오승환은 이후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토론토, 콜로라도를 거쳐 2020년 다시 삼성으로 돌아왔다.

2020년 6월 16일 잠실에서 두산을 상대로 한미일 통산 400세이브를 남겼고 지난해 4월 25일 광주에서 KIA를 상대로 통산 300세이브를 올린 뒤 다시 50세이브를 추가했다.

한미일 통산 세이브 기록도 472개까지 늘었다. 현재 페이스를 유지하면 올해 안에 한미일 통산 500세이브도 가능하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통산 500세이브 이상을 기록한 건 마리아노 리베라(53·전 뉴욕 양키스·652세이브)와 트레버 호프먼(55·전 샌디에이고·601세이브) 둘 뿐이다.

경기고 에이스였던 이동현(39·전 LG)과 한서고에서 전학 온 오승환. 오승환 제공
이제 오승환은 이렇게 성공한 투수가 됐지만 고교 시절에는 타자로도 이름을 날렸다.

한서고에 다니다가 경기고로 학교를 옮긴 오승환은 신일고와 맞대결한 2000년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 1번 타자 우익수로 선발 출전해 홈런을 포함해 3타수 2안타를 치면서 팀 우승을 이끌었다.

이날 중계하던 하일성 전 KBS 해설위원(1949~2016)도 “프로에서 통할 만한 타격 재능을 갖췄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올해도 20일까지 서울 목동야구장과 신월야구장에서 제76회 황금사자기가 열린다.

미래의 오승환이 타자로 뛰고 있을지도 모를 올해 황금사자기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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