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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람속으로

5·18 순직 경찰 유족-가해자, 42년만의 화해

입력 2022-05-20 03:00업데이트 2022-05-20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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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때 버스 돌진해 경찰 4명 사망
가해자 “정말 죄송, 얼굴 들 수 없어”
유가족 “진짜 사과할 사람은 신군부”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위 진압에 참여했다가 돌진한 버스에 의해 사망한 경찰관의 유가족(오른쪽)과 당시 버스를 운전했던 가해자 배모 씨가 포옹하고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위 진압에 참여했다가 사망한 경찰 유가족과 가해자가 42년 만에 만났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19일 국립서울현충원 경찰충혼탑에서 5·18 당시 사망한 경찰관 4명의 유가족 9명과 가해 당사자 배모 씨(76)가 ‘사과와 용서, 화해와 통합’이라는 슬로건 아래 만나는 행사를 열었다.

조사위에 따르면 1980년 5월 20일 오후 9시경 고속버스 기사였던 배 씨는 전남도청 옆 광주노동청 앞 경찰 저지선에 버스를 몰고 돌진해 정충길 경사(당시 39세) 등 전남 함평경찰서 소속 경찰관 4명을 숨지게 하고 7명을 다치게 했다. 배 씨는 재판에서 “밤이었고 최루가스가 버스 안으로 들어와 눈을 뜰 수 없어 사고가 일어났다”고 진술했다. 그는 사형이 확정됐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2년가량 복역하고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이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정 경사 등은 사망 직후 장례를 치르지 못했고 1980년 5월 말에야 겨우 화장을 할 수 있었다. 경찰관 3명의 자녀는 당시 함평초교 6학년 동창이었다. 유족 대표 정원영 씨(53)는 “학교에 갔는데 친구들이 아버지 사망 소식을 알고 위로해줘 책상에 고개를 묻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유족들은 5·18 이후 수년 동안 연금을 전혀 받지 못하는 등 유공자로서 제대로 된 예우도 못 받았다고 했다.

일부 유족들은 2017년경부터 배 씨를 만나 사과를 받고 한(恨)을 풀려 했지만 잘 진행되지 않았다. 조사위가 5월 초 배 씨와 화해 자리를 제안했지만 이번에는 일부 유가족들이 망설였다. 양측의 어려운 결심으로 이날 화해의 자리가 마련됐다.

배 씨는 이날 오전 충혼탑에 분향·헌화하고 근처에 있는 희생자 묘비에서 묵념하는 내내 굳은 표정을 지었다. 몸도 조금씩 떨었다. 배 씨는 유족들에게 “뭐라고 말씀드릴 수가 없다. 죄송하다. 막막하고 얼굴을 들 수가 없다”며 고개를 떨궜다. 유족대표 정 씨는 “5·18과 관련해 진짜 사과해야 할 사람들은 신군부 인사들”이라며 “배 씨가 숨진 경찰관 4명이 명예를 회복하는 것에 가교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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